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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준구] 투사와 조율가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직사회와 총성 없는 전투를 벌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 재수 기간 북핵과 경제정책, 권력기관 개혁방안 등을 완성한 상태였다. 북핵 문제는 필요하면 남북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서라도 경협 주도의 비핵화를 이끌겠다는 전략이 확고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극심한 경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경제적 약자의 지갑을 두텁게 해줘야 한다는 정책적 소신이 있었다. 국가정보원과 검·경 개혁 작업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속도를 냈다.

하지만 보수정권 9년 반은 긴 시간이다. 청와대는 공무원의 보수화를 여러 차례 하소연했다. 통일부가 대북관리부가 됐다, 기획재정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 국가정보원과 달리 검찰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기재부 관료는 “이제 정부가 들어서면 공무원이 정책을 만들어 바치는 시대는 지났다”며 “앞으로는 정권이 정책을 가져오고, 공무원은 정책 이행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정권과 공직사회 간 견제와 충돌은 정권이 교체되든, 재창출되든 재현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밀릴 수 없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경제·사회·언론 개혁에 투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외부까지 발을 넓혀 모셔왔다. 문 대통령이 저서를 읽고 직접 영입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 청와대도 의아함을 드러냈던 인사다. 조국 민정수석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권력기관 개혁을 지휘한다. 최근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폭로로 책임론이 비등하지만, 청와대는 달리는 말을 바꾸진 않을 것 같다. 조 수석은 비사법고시 출신의 개혁 이론가다. 박 비서관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이후 한직을 전전했던 검사 출신이다. 일면식도 없는 조 수석의 연락을 받고 군말 없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번 사태로 차라리 검찰 수사를 받을지언정 청와대는 두 사람을 교체할 생각이 많지 않아 보인다.

정혜승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점진적 언론 개혁을 맡고 있다. 노무현정부에서 언론과 충돌했던 청와대는 기성 언론에 직접 손을 대기보다 디지털 미디어 확대를 통한 언론 영향력 약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 센터장은 청와대 인터넷 방송과 SNS 영향력 확대에 힘을 쓰고 있다.

반면 김의겸 대변인은 언론에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으며 정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일한, 근본부터 투사였던 문 대통령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대표를 거치며 조율가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 같다. 친문(친문재인) 진영과는 인연이 없었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예비캠프에서 영입했다. 정부 출범 후 조 수석에게는 “정무적 책임은 내가 지면 된다. 걱정하지 말고 일하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에는 조율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임 실장은 문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을 상당 부분 의지하는 2인자다. 사회수석에서 영전한 김수현 정책실장도 대표적인 조율가다. 그가 정책실장으로 옮긴 이후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기조 변화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적극 지지층은 경제 정책의 개혁성 후퇴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리고 진작부터 김 실장 임명에 실망감을 내비쳤지만, 이념에서 현장으로의 경제 정책 변화는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시민단체에서 대표적인 투사였던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이 첫 작품으로 제주 강정마을 갈등을 봉합한 점도 눈에 띈다. 김 실장 체제에서 부처 장악력이 높았던 윤종원 경제수석이 논쟁적인 정책을 어떻게 집행할지도 주목된다. 그가 대사로 근무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속도조절을 정부에 주문한 바 있다.

청와대는 내년 5월 집권 3년차를 맞아 개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실장을 포함해 청와대 참모 대부분 인사 가능성이 거론된다. 투사와 조율가의 비율이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이다.

강준구 정치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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