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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신창호] 서러운 아이스하키



6대 6, 얼음판 위에서 납작하고 작은 퍽을 놓고 혈전을 치르는 게임, 하나의 팀이 아니면 단 한 골도 넣을 수 없는 경기, 인간이 만든 스포츠 가운데 가장 빠른 경기….

아이스하키를 정의하는 수식어들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한·중·일·러 4개국 실업팀이 열전을 벌이는 아시아리그가 요즘 한창이지만 수천석에 불과한 경기장 관중석조차 다 채우지 못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아이스하키를 하는 인구 역시 수천명에 불과할 듯하다. 개중 직업 아이스하키 선수는 수십명이고, 학교스포츠 선수는 수백명이다.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는 실내링크도 몇 개 되지 않는다.

후진적 저변을 가진 우리나라 남자 아이스하키 팀은 지난해 기적을 만들었다.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십에 진출한 것이다. 수준차가 심한 종목이라 세계선수권대회도 챔피언십·디비전1·디비전2·디비전3로 나누어져 있다. 한 단계를 올라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아이스하키계의 정설이다.

우리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일찍 시작한 호주는 60년째 디비전2와 디비전3를 오르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수년 만에 디비전1 그룹B에서 그룹A를 거쳐 챔피언십까지 올라갔으니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다. 챔피언십에 소속된 캐나다 미국 러시아 스웨덴 체코 핀란드 독일 같은 나라들의 아이스하키 선수를 다 모으면 아마 인구 100만명 대도시를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문재인 대통령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강원도 강릉 아이스하키 센터를 몇 번이나 방문했다. 아이스하키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일은 아마 처음이었던 듯하다. 그때 정부는 남녀 아이스하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모든 걸 바쳐 운동하는 선수들에겐 단비와도 같았다.

며칠 전 조그만 뉴스 하나가 나왔다. 국방부가 국군체육부대 상무 남자 아이스하키 팀을 2019년 상반기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12월부터 아예 선수를 선발하지 않는 셈이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 같은 인기 종목은 상무팀이 ‘상설’이다. 반면 비인기 종목은 전혀 다르다. 사정이 생기면 있던 팀도 없어진다. 남자 아이스하키 팀은 평창 동계올림픽용이었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서럽기 이를 데 없다. 대학을 졸업해도 단 3개뿐인 실업팀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야구·축구·농구 선수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실업팀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 중엔 아이스하키를 못 잊어 동호인 팀에서 뛰는 경우도 많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꿈을 키우다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실업팀 선수가 된 경우도 있다. 70, 80년대의 헝그리스포츠가 권투였다면 지금 한국의 헝그리스포츠는 아이스하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업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면 또 고민의 시기가 다가온다. 군 입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군대 간다’는 건 절망과 같은 뜻이다. 운동을 중단해야 하는 이들에게 상무는 계속 선수로 남을 터전과 마찬가지다. 입대해 더 단단한 정신과 몸을 갖출 수 있는 돌파구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서러운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더 서럽게 만든 일일지 모른다. 청춘을 바쳐 전진해온 이들이 기댈 언덕을 다 파헤치는 일일지 모른다. 형평성과 특혜를 운운하면 할 말이 없다. 누구나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며 그 기간 동안 좋아하는 일도 직업도 접어야 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국군체육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다양한 종목의 상무팀이 활동하고 있다면 할 말이 많다. 인기 종목은 팀을 계속 운영하는데, 비인기 종목이라고 외면하는 것이라면 더 할 말이 많다.

신창호 토요판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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