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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이진우] 북한은 국가다



북한의 국가성 인정하면
통일에 수반되는 문제를 간과·무시하는 통일지상주의 경계할 수 있다
통일 논의는 투명해야 하고
내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에 공들이는 만큼 비판세력과도 소통해야


북한은 국가다. 설령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북한은 국제법상 엄연한 하나의 국가다. 유엔 헌장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판단되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에 개방된다는 유엔 헌장 제2장 4조에 의하면 유엔 회원국은 모두 ‘국가’임에 틀림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1년 9월 17일 남한과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우리가 한 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할지라도 북한은 현실적으로 70년간 한반도의 특정 지역과 국민에게 독립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해 온 실질적인 국가로서 승인 받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적으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또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이 사실이 문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 비준이 위헌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간단명료한 답변이 쓸데없는 사달을 일으켰다. “북한은 우리 법률체계에서 국가가 아니다. 북한과 맺은 합의와 약속도 조약이 아니다.”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1년 6·15 남북공동선언, 2014년 10·4 남북정상선언은 도대체 무엇이며, 올해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되게 한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 만남을 왜 ‘정상회담’이라 부르는가.

남한과 북한 간 신뢰를 쌓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늘 말해왔던 진보정권의 이 말은 우리를 지극히 혼란스럽게 만든다.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이 이제껏 북한의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국가성을 부인했다면, 문 대통령을 비롯해 진보진영은 줄곧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평양선언 비준이 위헌적이라는 보수당의 주장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은 한마디로 정치적 궤변이고 말장난이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실은 문제의 본질에 맞지 않는 말을 형식적인 법 논리를 끌어다 억지로 합리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영토조항과 남북관계발전법의 법리를 굳이 길게 따질 필요는 없다. 북한이 국가냐 아니냐 의 법리논쟁은 결국 북한은 ‘국가이면서도 국가가 아니다’는 정치적 궤변처럼 소모적 정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 영토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통일을 실현하려면 우리는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되지만 국내법상으로는 국가가 아닌 북한의 모순적 지위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남북관계발전법이다. 그 본질은 북한을 준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국가 인정은 세 가지 이점을 갖고 있다. 첫째, 통일은 일차적으로 ‘국가 간 평화’의 문제가 돼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북한을 국가로 받아들이면 흡수통일 또는 무력통일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통일 자체가 국가 간 대화와 협상 대상이기 때문에 그 과정은 길고 지난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특수관계가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되면 통일 논의는 어쩔 수 없이 제도화되고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남북의 평화적 관계를 정착시키려면 우선 북한의 지위에 관한 우리 사회의 내부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정성을 다하는 만큼 야당을 비롯한 내부의 비판적 세력과도 적극 소통해야 한다.

둘째,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우리는 통일을 대한민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통일은 한편으로 우리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국가로 통일돼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을 추구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약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사회로 발전하는 것이 통일의 전제조건이라면, 우리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북한의 국가성 인정은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한다.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는 말도 사실 북한의 불가역적 비핵화보다 모처럼 시작된 평화 프로세스를 불가역적으로 만들겠다는 이 정부의 조급증에서 비롯됐다. 민족의 통일을 최고선으로 생각하면 그에 수반되는 많은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국내 경제정책의 실패를 남북문제의 성과로 덮으려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소원이 평화통일이라면, 평화가 통일보다 선행돼야 한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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