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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그는 왜 그렇게 분노했나



지난달 중순 서울 강서구 한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많은 사람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피의자 김성수(29)씨의 살인 동기는 극히 미미한데 비해 살인 정황은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담배꽁초를 치워 달라’고 했는데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도 치워져 있지 않아 화가 났다”고 했다. 이어 “게임비 1000원을 환불해 달라고 했는데 못 돌려받아 억울하고 분했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 가져온 흉기로 피해자의 얼굴과 목 등을 30여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즉각 응대하지 않으면 무참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다.

대개 우리는 잠깐 들른 가게 직원이 불친절하면 불쾌한 기색을 비치고, 좀 심하면 구두로 항의하는 정도에 그친다. 종업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짐작하면서. 그런데 그는 왜 그 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고 분노해 살인까지 저질렀을까. 그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참관한 포럼에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관점을 발견했다.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하는 학문)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소득 불평등이 큰 사회일수록 살인 같은 범죄와 중독 등 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요지로 발제했다. 소득 불평등이 낮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살인과 중독 등 사회 문제가 적은 반면 불평등이 큰 미국 포르투갈 영국 등은 사회 문제가 훨씬 많다는 통계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은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개인에게도 과도한 지위 불안을 심어주며 사회적으로는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나쁘고, 국민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도 OECD 국가 평균(21.6%)의 절반에 못 미치는 9.6%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나 된다. 사회역학자 김승섭은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사회와 단절된 병은 없고, 몸은 사회를 반영한다”고 했다.

분노조절장애 상황처럼 보이는 그의 범죄는 큰 소득 격차라는 우리 사회의 치부에 한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다. 김씨는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이 청년의 궁핍, 외로움이 그를 좌절과 분노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어려운 여건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많은 청년들을 떠올려보면 김씨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도 크지만 이 사건은 사회병리의 발로일 수도 있다.

‘대검찰청 2017 범죄분석’ 통계에서 미수를 포함한 살인사건 피의자 1043명 중 무직자는 42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많은 인원이 포함된 직업군은 일용노동자 98명이었다. 무직 자체가 범행동기가 될 순 없지만 불안정한 사회적, 경제적 상태가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조건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윌킨슨 교수의 연구 결과에 비춰보면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낮추는 것이 분노로 인한 살인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선뜻 동의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김씨가 회사원이었다면 그는 사건이 일어난 평일 오전 그 시각 PC방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일정한 수입이 있었다면 1000원 환불에 핏대를 올리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를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참여자가 8일 역대 최다인 116만명을 기록했다. 강력한 처벌이 정의를 세우는 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흉악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이다.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실업을 줄이고, 사회 전체의 소득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아픔을 길로 만드는’ 한 방법이다.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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