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무지도 죄가 된다



올해 국가 건강검진 대상자여서 더 늦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지정병원 중 한 곳을 선택했고, 내가 이용하기에 적당한지 둘러보기 위해 엄마가 미리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손님이 많아서 바쁘니까 환자가 불구자면 보호자 두 명을 동반하고 내원하라잖아. 아니, 당연히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왜 보호자한테 미뤄? 그리고 명색이 종합병원에서 일한다는 작자가 무식하게 불구자가 뭐니 불구자가. 요즘 누가 그런 말을 쓰냐고.”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나는 일어설 수조차 없다. 휠체어와 높이가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혼자서, 혹은 동반한 보호자의 도움만으로 옮겨 앉는 게 가능하지만, 병원엔 그렇게 옮겨 앉기 힘든 높이의 의료장비들이 많다. 산부인과와 치과 진료용 의자처럼 접근이 까다롭거나 너무 높은 장비의 경우엔 안전을 위해 숙련자의 도움이나 리프트 장비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엄마가 미리 가서 검진에 이용되는 장비들을 살펴보고 이동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도움을 청해두려 했던 것이다.

엄마는 병원에서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거부한 것만큼이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의 입에서 ‘불구자’라는 말이 나온 것에도 화가 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종합병원에서 법이 정한 환자 보호 의무와 장애인 차별 금지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불구라는 말은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혐오단어였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모두가 장애인과 같은 마음이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이 작정하고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도 당하는 이에게 상처가 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엔 무지도 죄가 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잘못은 그때그때 바로잡고 배우길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 역시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쩌겠나.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배우고 또 배우는 수밖에.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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