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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승욱] 규제개혁, 토론이 더 필요할까



규제란 인간의 욕망을 동력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성적으로 작동하도록 제어하는 장치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점, 담합, 관료주의, 부패 같은 부작용과 결합하면 경제의 활력을 죽이는 주범이 된다.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규제개혁을 말할 때 많은 사람이 1978년 미국 민간항공위원회를 책임진 알프레드 칸을 앞세운다. 그는 정부가 정하던 요금을 항공사에 맡겼다. 허가 없이도 항공사를 세울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몇몇 기업이 편안하게 돌렸던 시장이 경쟁으로 요동쳤다. 사우스웨스트항공 같은 저비용항공사(LCC)가 속속 등장해 산업 전반에 활력이 생겼다. 기술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관련 산업도 급성장했다. 항공업계의 규제개혁 성공은 1980, 90년대 철도·전력 등 주요 기간산업 및 금융 개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반대급부도 컸다. 칸의 개혁 이후 경쟁이 격화되고 기업마다 비용 줄이기에만 전념하면서 안전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항공업계 전체의 파이는 커졌지만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은 곧바로 몰락해 대규모 실업을 야기했다. 10대 항공사 가운데 무려 6곳이 도산했을 정도다. 관련 업계도 거센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관제사를 비롯해 안정적인 일자리에 종사하던 수많은 사람이 해고됐다. 장거리 버스 업계는 초토화됐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그레이하운드는 운전기사의 80% 이상이 참여한 파업으로 심각한 사회혼란을 불러왔다. 후폭풍이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쟁은 우리가 도로의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를 이야기할 때 충분히 진행됐다. 10년 넘게 계속된 토론인 것이다. 사실 이제 와서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할 이유도 없다. 규제개혁이 경제를 살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할 필요도 없다. 대신 이런 이야기가 앞에 나와야 한다. 지금 마포대교 보행자도로에는 전동킥보드, 전동휠, 세그웨이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가 별나게 많이 다닌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길이 막힐 정도다. 전망이 좋아서? 연애 핫플레이스라서? 모두 아니다. 한강시민공원과 여의도공원에서 타다가 단속되면 과태료 5만원을 내기 때문이다. 여의도공원에 놀러 와 재밌는 탈것을 빌렸는데 찻길은 위험하고 공원은 들어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마포대교를 왕복한다. 전동킥보드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를 공원에서 못 타게 하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전동장치라 해도 자전거보다 빠르지 않다. 친구들이나 연인이 함께 타면서 목숨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탈 곳이 없는 애매한 상황이 몇 년째 계속되면서 중국에 기술개발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볼멘소리가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상 퍼스널 모빌리티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될 뿐이다.

그런데 법을 바꾸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듯하다. 주장은 이렇다. 보행자의 안전도 생각하고 자전거 대여업자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 넘어지거나 걷는 사람과 충돌해 다쳤을 때 누가 책임을 질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사고가 나면 정부를 향해 그동안 뭘 했느냐고 다그칠 게 분명하니 섣불리 나설 수도 없다. 그래서 답은 정해져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모두 해결하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금지다.

칸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보다 여의도공원을 세그웨이로 다녀서는 안 되는 이유를 놓고 다투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정부의 역할은 규제 자체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규제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쉽게 돈을 벌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규제개혁이라는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아무리 사소해도,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도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또다시 말만 하는 정부가 될 뿐이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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