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세상만사-이성규] 김동연, 그 이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교체될 모양이다. 최근 며칠 새 청와대 주변에서 ‘김앤장(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동시 교체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 부총리 역시 1일 혁신관계장관회의 참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이라도 책임지고 싶은 심정이 왜 없겠느냐”며 사퇴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사실 김 부총리는 지난 1년여 동안 수차례 청와대 쪽에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청와대가 지금 김 부총리 교체설을 언론에 흘리는 까닭은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을 한 듯싶다.

왜 지금일까. 올 한 해 한국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고용은 정체됐고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일자리 질도 나빠졌다. 생산은 물론 투자·소비 모두 부진에 빠졌다. 경기동행지수는 6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지표상으로도 경기는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 권력 내부에서 ‘경제가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란 고민보다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온 것 같다.

물론 김 부총리가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김 부총리는 취임 이래 수많은 정책들을 쏟아냈다. 양적으로는 성공이었을지 몰라도 정책의 질과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김 부총리 역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경제 운용은 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말할 사람은 김 부총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올해 결정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부작용을 막을 방안의 부재 속에 이뤄진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경제 전반에 독으로 작용했다. 정말 송구스러워야 할 사람은 김 부총리의 걱정과 만류를 뿌리치고 이를 강행한 쪽이다. 청와대는 겉으로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규제혁신 등 혁신성장을 위한 김 부총리의 목소리는 최종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위 경제관료는 “청와대가 국정철학에 맞춘 국정과제를 만들었으면 현장 목소리를 듣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짜는 건 부총리 몫이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김 부총리 교체는 우리 경제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내년에도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일본식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경제팀 교체는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혼란과 시행착오를 야기할 수도 있다.

우선적으로 대통령이 유능하고 시장과 기업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앉히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자신들과 생각이 비슷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고 찾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선 이후다. 청와대가 경제부총리에게 진정한 실권을 줘야 제2의 ‘김앤장 사태’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김 부총리를 세워놓고 청와대가 투톱 시스템 운운했던 것 자체가 경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현 국정 시스템상 청와대는 경제부총리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 후임 부총리가 진짜 실권을 가졌을 때 시장과 기업도 그를 신뢰하고 정부 정책에 발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증세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김 부총리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전례가 반복된다면 내년 우리 경제는 또다시 컨트롤타워 논란에 휩쓸리며 표류할 수밖에 없다.

내년 우리 경제는 국정과제를 실험하고 테스트할 한가할 시기가 아니다. 사실 김 부총리도 장 실장도 가려는 방향은 같았다. 경제를 살려 그 온기를 국민 모두에게 전하는 것. 갈 길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소득주도성장으로 부를지 혁신성장으로 명명할지는 중요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천명한 ‘포용(국가)’이 후임 경제팀에서 실현되길 바란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