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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출렁다리 경쟁



경기도 파주 감악산·마장호수, 강원도 원주 소금산…. 이 지역의 공통점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출렁(흔들)다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이나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에 만들어져 뛰어난 접근성을 지닌 덕분이다. 파주 적성면 해발 670m 감악산 자락에 자리한 출렁다리는 수도권 명물이다. 2016년 9월 감악산 산허리를 휘도는 둘레길에 만들어진 길이 150m짜리 이 다리는 ‘국내 산악 현수교 중 최장’임을 강조했다. 2009년에 세워진 충남 청양군 칠갑산 기슭의 천장호 출렁다리 207m에 못미쳤기 때문에 새로운 수식어를 앞세웠다.

이 다리를 벤치마킹한 것이 소금산 출렁다리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소금산의 두 개 봉우리를 잇는 폭 1.5m, 길이 200m인 다리다. 감악산의 ‘최장 산악 현수교 타이틀’을 빼앗아왔다. 이에 다시 파주시가 지난 3월 광탄면 기산리 마장호수에 개장한 국내 최장 흔들다리(길이 220m, 폭 1.5m)를 완성했다. 세 곳이 차례로 ‘최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출렁다리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부상하자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출렁다리=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양 앞다퉈 출렁다리 건설에 나서고 있다. 과거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케이블카나 레일바이크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관광객 유치효과가 뛰어나다는 판단에서다.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었거나 짓고 있는 출렁다리만 50개에 달한다.

충남 예산군은 국내 최대 농업용 저수지인 예당호에 소금산의 두 배가 넘는 402m 출렁다리 공사를 벌이고 있다. 논산시도 탑정호에 예당호보다 198m 긴 600m 길이의 출렁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다. ‘최장’이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길게 더 길게’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마장호수의 ‘최장 타이틀’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베끼기’해서 우후죽순 들어선 출렁다리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형태여서 감동은 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처음엔 호기심과 입소문에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

안전문제도 부각된다. 명확한 설치기준이나 안전기준도 없이 자치단체가 제각각 관리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실제 미끄러짐, 어지럼 등으로 소방서가 구조구급활동을 위해 출동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더 긴 출렁다리를 건설하는 경쟁이 안전을 무시한 부실공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출렁다리는 교량 설치 기준을 따를 뿐 도로법을 적용받지 않아 시설물 안전관리 및 재난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칫 시설 결함으로 사고가 날 경우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일부 출렁다리는 안전점검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최근 감사원은 출렁다리와 집라인, 케이블카 등에 대한 감사를 벌여 위법·부당하거나 제도개선이 필요한 9건을 확인해 국토교통부 등 18개 기관에 주의를 요구하거나 제도를 보완 개선하도록 했다. 지난 6월 현재 전국에서 설치·운영 중인 100m 이상 길이의 출렁다리는 22개로, 강진군 등 12개 기관의 13개 출렁다리는 바람에 견딜 수 있는 내풍 안전성이 검토되지 않았다.

일부 다리는 케이블이 구조물을 지지하는 특수교 형식(현수교)이라 낙뢰에 의한 케이블 손상 위험이 높은데도 피뢰침 등 낙뢰보호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고, 어떤 곳은 케이블 연결이 불량하거나 볼트 풀림 등이 있었다.

장기적인 안목 없이 시민 발길 붙잡기에 급급한 관광자원을 마련한 결과다. ‘따라하기’로 만들었더라도 사후 관리를 잘해 최소한 이용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게 옳은 일이다. 그보다 앞서 천편일률적인 자연경관보다 해당 지역 특색에 맞거나 개성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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