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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조윤석] 기후난민이 됐던 겨울



영원할 것처럼 덥더니 설악산에는 벌써 눈이 왔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16일이나 이른 눈 소식이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 면적이 급감하고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해지자 제트기류에 갇혀 있던 북극 상공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흘러내린 탓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면 ‘AIRS’라는 시스템을 통해 2013년 12월 1일부터 2014년 1월 7일까지 미국을 강타한 이상한파의 원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극지방 제트기류의 움직임을 3차원으로 구현했다.

한파는 겨울철에 나타날 수 있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기상청에서는 ‘뚜렷한 저온의 한랭기단이 위도가 낮은 지방으로 몰아닥쳐 급격한 기온의 하강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겨울철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름철 폭염과 함께 겨울철 대규모 한파는 기후변화 재난의 한 세트를 구성하고 있다. 폭염이나 태풍처럼 한파 또한 한 번 발생하면 그 피해 정도가 크고 단기간에 큰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파는 내가 몸담고 있는 십년후연구소가 기후변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십년후연구소는 처음에는 가까운 지인(세간에는 홍대 앞 문화예술인으로 불리는)들과 함께 십년 후를 걱정하는 노후대책 마련 모임 같은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후 홍대 앞은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지도에 없는 이름 ‘홍대 앞’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이었던 예술가 거주자들이 동네에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곧 떠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안고, 이곳 다음의 삶은 어디에서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궁리하는 모임이었다.

그중 몇 명의 결론은 귀농이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월세 걱정 없이 마음껏 문화예술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우리의 ‘포스트 홍대 앞’을 만들자.” “그렇다면 어디로 가볼까.” 먼저 자리 잡은 귀농학교 선배들의 도움으로 전국을 돌아보며 발품을 팔던 중에 따뜻한 남녘의 한 마을과 인연이 닿았다. 부푼 마음으로 마을을 돌아보는 이주 희망자의 눈에 아열대농업연구소라는 입간판이 들어왔다. “아니, 아열대농업연구소라니,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가 아닌 곳에도 아열대작물이 자란다는 말인가.” 그제야 지구온난화로 대나무 북방한계선이 점차 북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착지에 집을 지을 계획을 추진 중이던 필자의 머릿속에 불이 번쩍 켜졌다. “그래!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이 지역은 아열대 기후대가 되겠구나.”

마을을 둘러보니 수도관이 땅 위로 노출되어 있거나 아주 얕게 묻혀 있었다. 겨울철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전공을 발휘하여 기술이 없어도 손수 지을 수 있는 집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서울에서 세계적인 건축을 하라고 하고 나는 이곳에서 친구들을 위한 아열대 건축을 하자, 친구들의 인생을 집값에서 해방시켜주자, 그리고 예술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 목표로 추진한 첫 프로젝트가 우리 집 짓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열대 건축을 떠올리며 저렴하고 시원한 집을 지었다. 열대지방의 방갈로를 상상하시면 되겠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갑자기 추워졌다. 영하 9도까지 내려갔다. 마을 어르신들이 내 평생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단열도 하지 않고 난방설비도 없는 우리 집에서는 버틸 수 없는 추위였다. 이상한파였다. 나는 기후난민이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십년후연구소가 시작되었다.

올해 겨울 우리나라는 예년보다는 따뜻하지만 며칠은 매우 춥고 눈도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세먼지도 매우 심할 거라고 한다. 미리미리 단단히 준비하시면 좋겠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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