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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우리 동네 김목수



내가 김목수를 찾는 데는 거의 2년이 걸렸다. 2016년 집을 짓고 제주에 내려올 때부터 별채를 한 채 더 지으려 계획하고 있었다. 땅도 그만큼 남겨 놓았다. 2년 동안 어떤 모양으로 집을 지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누구에게 짓게 할까도 포함돼 있었다. 1차 집을 지을 때는 제주시내 시공업자에게 맡겼지만 이번에는 동네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주변의 공사장과 신축 건물들을 보며 누가 지었는지 묻고 다녔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동네 목수들에 대해 들었다.

이 질문의 종착점은 항상 한 사람이었다. 하도리에 살고 있는 김목수. 2년 전 제주에 이주했을 때 우리 집과 같은 해안도로변의 신축건물 2곳을 지은 사람이 김목수라고 처음 들었고, 그 후 그가 짓는 여러 집을 보았다. 주변에 그에 대해 물었을 때 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고 칭찬의 대부분은 사람이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채 설계를 마칠 때쯤 돼서 그와 만나야겠다고 결정했다. 김목수를 처음 들은 지 2년이 넘은 셈이다.

처음 본 김목수는 몸이 튼튼하고 검게 그은 얼굴은 선해 보였다. 김목수가 갖고 온 견적서는 먼저 지은 것보다 단가가 낮았다. 견적 항목 중 바닥은 마루로 까는 걸로 돼 있었다. 내가 봤던 아무개네 집 같은 거냐고 물었다. 그가 “아무개를 알아요” 하고 되물었다. 그 집에 들어가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봤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옆집, 또 다른 집은 계단을 새로 만든 것까지 그동안 당신이 지은 집들을 유심히 봤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먼저 지은 것보다 어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때보다 싸다고 답했다.

그와 거의 매일 만나고 있다. 내가 농담을 하면 “나는 머리가 나빠 그렇게 말하면 몰라요” 하던 사람이 요즘은 벽체 붙인 게 떨어질 것 같다 하면 “반창고로 붙이죠 뭐”라고 여유가 생겼다. 그도 낚시를 한다. 처음에는 공사 얘기하다 낚시 얘기를 했는데 요즘은 낚시 얘기만 한다. 서울에서 친구 2명이 왔다. 비가 오는 그날 저녁 우도에서 가져왔다며 해삼을 한 봉지 들고 왔다. 친구들과 창고로 놓아둔 컨테이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해삼을 쓸어 먹었다. 친구들은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김목수는 50대 중반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어른 목수를 따라다니며 건축 일을 배웠다. 20세 때 건축목공 국가기술자격을 땄다. 총처럼 쏘는 요즘 ‘타카’가 아니라 망치로 못을 박았고, 펌프카가 아니라 등짐으로 콘크리트를 지고 날랐다. 어른 목수가 죽고 김목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 도목수가 됐으니 그에게 딸린 많은 협력업체를 먹여 살려야 하는 짐을 지게 됐다.

김목수는 주종목 골조는 직접 한다. 그밖에 중장비, 철근과 배관, 전기가 함께 들어간다. 미장이 이어지고 창호, 페인트, 도배가 따라간다. 분야마다 2명에서 5∼6명의 인부가 또 있다. 이들이 김목수가 건축 공사를 맡아오길 기다린다. 종합건설회사의 CEO에 다름없다. 김목수는 현재 6개의 공사현장이 있다. 7∼8개의 공사가 계속 이어져야 부문별 협력업체가 돌아간다고 한다.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자리를 김목수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별채 준공을 한 뒤 현재 추가 공사를 하고 있는데 공사비가 얼마인지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끝난 뒤 얼마 달라면 줄 생각이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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