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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신동엽] 정책 간 순서의 중요성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특히 행동하는 즉시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 장기간에 걸친 복잡한 과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경영과 행정에서는 정책의 순서가 결정적 차이를 낳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위기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정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들 간 선후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원인이다.

기업경영을 보면 정책 간 순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경쟁우위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들은 다양하다. 담대한 비전, 정교한 전략, 적극적 기술투자, 효율적 프로세스, 신시장 개척, 탁월한 인재 확보, 핵심역량 강화, 핵심가치 준수, 유연한 환경 적응, 끊임없는 혁신 등이 초우량기업에서 관찰되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모두 동시에 실행하면 어떻게 될까. 언뜻 생각하면 좋은 정책들을 동시에 시도하니 상승작용으로 성과가 급증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바로 실행순서의 교란 때문이다.

정책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책들과의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한 정책이 먼저 실행돼 기반을 구축해야 그다음 정책이 성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정책 간 선후관계 스케줄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현 정부의 성장정책을 둘러싼 혼란은 바로 정책 간 순서를 어긴 데서 시작되었다. 현 정부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쌍두마차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 적합한 정책들이다. 이 두 가지가 선순환구조를 이룰 때 21세기형 성장이 가능하며 실제로 선진경제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종업원들에게 높은 소득을 제공해 소비를 많이 하게 하면 시장 수요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혁신이 활성화돼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고 또다시 더 높은 소득으로 선순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 간 실행순서다. 소득주도성장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고임금을 제공할 자원의 창출이 선행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혁신성장의 역할이다. 즉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 종업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고, 그 결과 소비가 늘어나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의 혁신을 더욱 가속화시켜 전체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은 선후를 바꿀 수 없으며 반드시 혁신성장을 먼저 실행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소득주도성장을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혁신성장이 충분한 소득을 제공할 정도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산업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5년 임기의 현 대통령제에서는 임기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가시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따라서 현 정부는 무리를 해서라도 최저임금과 같은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 소득주도성장을 먼저 실행하고 증가된 소득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기를 기대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혁신성장의 선행 없이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 위험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가치창출 없이 기존에 존재하던 경제적 가치를 재배분하는 방식이어서 필연적으로 제로섬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즉 새로운 가치창출 없이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주들의 비용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득이 증가한다고 항상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에는 가처분소득을 당장 소비하기보다는 미래에 대비해 축적하게 되고 오히려 경제는 더 위축되게 된다.

소득주도성장을 먼저 실행했는데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기대했던 선순환구조가 깨지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 새로운 가치창출 없이 높아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던 자원을 계속 고갈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듯이 아무리 급해도 정책에는 선후관계가 있다. 정부의 바쁜 심정은 이해하나 조급한 마음에 이런 평범한 원칙을 어긴 결과 우리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져서 안타깝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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