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마음이 있는 곳



생각이 머리의 작용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마음’으로 오면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마음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마음의 경로는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쨌든 산속에 숨은 샘처럼 내 몸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얼마 전 지하주차장에 떨어져 있는 인형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노란 실을 가늘게 꼰 머리카락과 까만 단추를 얽어 눈을 단 헝겊인형이었다.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실수로 잃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벌써 까만 때가 오른 인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나는 입구가 바로 보이는 기둥에 기다리는 듯 앉혀 두었다. 주차장을 떠나다가 되돌아와 눈에 잘 띄게끔 자세를 고쳐 주기도 했다. 제 인생에서 맞이한 큰 슬픔을 눈물로 쏟으며 한 아이가 여기까지 닿았을 때, 가능한 따뜻한 안도 속에서 꼭 품에 안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씻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도 괜히 생각이 났다. 지금쯤 주인이 가져갔을까. 행여 누가 발로 툭, 차 버려 지나가는 바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지랖이 발동해 잠바를 걸치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곧추세웠던 허리가 조금 미끄러져 내려온 것 같았지만 다행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꼭 오늘 저녁이 아니더라도 내일쯤 아이 부모가 차를 쓰기 위해 내려온다면 반갑게 발견하고는 주인에게 데려다줄 것이었다.

다음날, 오후 강의라 느지막이 나갔을 때도 인형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저 단추일 뿐인데 운전하는 내내 나를 쳐다보던 까만 눈동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코르덴을 기운 헝겊일 뿐인데 차가운 바닥에 오래 앉아 있는 게 걱정되었다. 강의를 할 땐 또 마음을 흔드는 시의 구절들 때문에 인형 얼굴을 떠올렸다. 인형에게도 꼭 마음이 있을 것 같았다. 귀가할 때 데려갈까. 그러나 뒤늦게 주인이 찾을지도 몰랐다. 몸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분명 내 마음은 거기 있었다.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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