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것들



돌이켜보면, 정말로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내 욕심에 내가 치일 때였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힘들었던 적도 많지만, 그런 건 문제를 해결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복됐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자기 위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욕심에 짓눌리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니 남을 탓할 수도, 내 만족에 관한 문제이니 적당한 회복의 기준도 없었다. 그런 순간과 직면할 때마다 나는 내 안에 동굴을 파고 숨어들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가진 것에 비해 지나치게 큰 욕심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망 없는 꿈이란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는 거대한 산의 정상을 올려다보며 그곳에 오른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어쩌면 첫 문장을 쓰던 순간부터 내가 원한 건 오로지 타인의 인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쉬지 않고 산을 올랐다. 그러나 산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며 기어오르고 또 기어올라도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굴러떨어지길 반복했다. 정상에 집착하는 내내 불행했지만, 다른 길은 알지 못했다.

정상이 아니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삶이 부러지고 나니 그전까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은 사소해졌고 사소해 보이던 것들은 소중해졌다. 산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돌리자 들판을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수나 바다를 헤엄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망망대해에서 다이빙하는 이도 있었다. 심연을 향해 잠수하는 사람의 신중함은 경이로웠다. 파도를 타는 이들은 굳이 어떤 곳을 향해 가려 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눈부셨다. 욕망을 버리고 자유를 얻었다는 구태의연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욕망이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것 말고도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렵사리 들판과 호수와 바다를 보게 된 나도, 여전히 세상의 맨 꼭대기를 향해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당신도.

황시운(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