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한반도포커스-강준영] 비핵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북핵 협상의 돌파구 마련이 기대됐던 3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도 성사됐지만 미·북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은 날짜도 못 잡고 있고.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도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다. 협상동력 유지에 부심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통해 비핵화 진전을 위한 국제 협력을 타진했지만 한·미 간 이견만 불거지고 있다. 복잡한 긴장국면이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까지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은 진전이 없다. 미국은 비핵화를 확신할 수 있는 증거 제시를, 북한은 미국의 중간선거와 한국의 평화 의지를 이용해 비핵화의 본질에서 벗어난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조치에 걸맞은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미국은 최소한 핵 리스트라도 제출해야 비핵화의 시작으로 간주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종전선언을 강조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에게 핵 리스트 신고를 거부하면서 제재 완화를 강력히 촉구했다고 한다. 실질적 비핵화 진전에 대한 기대와 비핵화의 주변화라는 현실적 괴리만 증폭되고 있다.

비핵화 협상의 촉진자임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는 남북 간 협력이 비핵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4·27 판문점 선언 이행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기존 대북 제재 유지를 위한 공조가 우선이라며 남북 경협이 북한 비핵화의 속도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남북이 11월 말∼12월 초 남북 철도 연결 및 도로 현대화 사업 착공에 합의하자 미 재무부는 한국의 7개 은행에 직접 북한과 교역하면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한다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경고까지 내려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미국은 이미 북한 편에 서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중국·러시아와 한국이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대북 제재국면을 국제적으로 풀어보려는 정부의 시도도 여의치 않다. 유럽 순방 중에 문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북한의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가 우선임을 분명히 했지만 한국의 행보는 미국이 보면 대북 제재에 대한 탈(脫)미국적 행보다. 그러나 과거 대북 협상의 실패 경험을 목도한 국제사회는 현재 북한의 행보에 관대하지 않다. 한·프랑스 정상회담 다음날 마크롱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대북 제재 기조 유지에 인식을 같이했다. 아셈(ASEM) 정상회의의 대북 기조도 제재 유지다. 한·미 간 공조 없이 국제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다.

어렵게 중재한 비핵화 협상의 동력 유지도 중요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미국 때문에 핵·미사일을 개발했고,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가 비핵화의 시작점이라는 북한의 논리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본격적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진행되면 대북 제재 완화를 추진하자는 주장은 가능하지만 북한의 조치를 수용해 제재 완화에 동조할 국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대북 핵 협상 실패에 대한 상처가 있다. 때문에 북한에 동조한다는 인상을 주는 남북 간 경협이나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한·미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미 간 균열은 북한의 대외 공간도 확대시킨다. 북한은 중국을 개입시켜 동시적·단계적 비핵화의 원군을 얻었고, 북·중·러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납치자 문제를 빌미로 정상 간 대화를 모색 중이다. 일견 동북아에서의 대화 국면 전개로도 보이지만 이것이 비핵화에 유리하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남북 정상이 전쟁 없는 한반도 의지를 확인했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북한을 설득해 실질적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행위자가 돼야 한다. 조급함을 떨쳐내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