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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조민영] 리벤지포르노와 협박



남녀가 사랑을 했다. 서로를 촬영했다. 남이 봐서는 안 되고, 또 보리라 생각하지 않은 둘만의 내밀한 영상과 사진도 포함됐다. 더 내밀할수록 더 의미 있는 거라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헤어졌다. 어느 한쪽은 원치 않는 헤어짐이었을 수 있다. 헤어짐의 과정에 피차 회복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와 손해를 입었을지도. 당사자밖에 모르는 남녀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 도식화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서로 몰랐던 이들이 만나 사랑을 하고 헤어지면서 겪을 수 있는 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이별 후나 혹은 그 과정에 상대방을 붙잡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에 두겠단 마음을 먹는다. 뜻대로 안 되면 내게 준 상처만큼 너에게도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 수단으로 사랑하던 당시 찍은 영상과 사진이 등장한다. 내가 너의 이런 사진을 갖고 있다며 보낸다. 그러면서 이래도 나를 버린다면 그 사진과 영상을 인터넷에, 너의 지인이나 커뮤니티에 퍼뜨리겠다고 한다.

어떻게 보이는가. 최소한 이 단계부터는 연인의 이별이 ‘사건’으로 변질된다. 법적으로 볼 때 위법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너의 이런 사진을 갖고 있다며 보낸’ 행위는 성폭력특별법(성폭법) 제13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와 관련된다. 이 법은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사진과 영상을 퍼뜨리겠다’는 협박은 말 그대로 협박죄에 해당한다. 형법 283조는 사람을 협박한 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가수 구하라씨 전 남자친구 최모씨의 성관계 동영상 협박 의혹 사건을 계기로 뜨거운 감자가 된 이른바 ‘리벤지포르노’도 이 선상에 있다. 현재까지 밖으로 드러난 구씨와 최씨 사이의 대화 내용이나 영상물 등만으로도 앞서 설명한 위법요소에 상당 부분 대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 위에 단순화한 과정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상대가 모르게 찍었다거나 상대를 강압적으로 설득하거나(요구해서) 폭력 등을 수반해 찍었다면 이는 보다 형량이 높은 성폭법 14조 위반에 해당한다. 이후에 해당 사진을 유포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성단체들도 이 부분 처벌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상기 법무부장관도 불법 영상물 촬영과 유포 범죄에 대해 엄정 대처방안을 지시했다.

그런데 불법영상물이라는 말은 영상물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다. 촬영 당한 이의 동의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관계였다면 이 동의 여부를 다투는 과정이 진흙탕이 되고 피해자의 상처는 더욱 커진다.

법정 최고형과 달리 성폭법 14조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실제 징역·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8.7%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보면 그 진흙탕이 무슨 소용일까 싶을 정도다. 촬영물을 실제로 유포한 증거가 있다면 촬영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미 인격적으로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통상 리벤지포르노 사건에서 촬영물 유포 단계 전에 등장하는 협박이 아닌가 싶다. 협박죄는 촬영물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 갖고 있는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만으로도 명확한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이 단계에서 제대로 막는다면 실질적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다. 한 번 유포된 영상물은 영구적 삭제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갖고 협박하는 것은 어떤 무기를 들고 협박한 것보다 강도 높은 협박일 수 있다.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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