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새로운 출발



여자 친구들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말했다. “난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나일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지만 함께 있던 모두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표정을 짓곤 했다. 누군가 훌쩍이기 시작해서 결국 울음바다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 엄마들의 삶을 그토록 눈물겹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던 때부터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을 때까지, 비슷한 상황은 되풀이됐다. 그 시절 함께 훌쩍이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다.

그들이 그토록 닮지 않겠다던 그들의 엄마와 얼마큼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간혹 궁금해진다. 불과 서너 달 전까지,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씩 김치를 담갔다. 할머니도 아빠도 익은 김치는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장은 김장대로 했다. 절기에 맞춰 장을 담갔고 여러 가지 청과 장아찌도 담갔다. 할머니 생전엔 바닷가 출신 집안답게 반찬용 젓갈 두어 가지와 김치용 액젓도 직접 담가 먹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전업주부로만 산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늘 이런저런 직장에 다니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엄마의 일을 존중하지 않았다. 엄마가 벌어오는 돈은 아빠가 벌어오는 돈에 비해 가볍게 취급했고 표 안 나게 쓰였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비혼을 선택했던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엄마가 우리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건 싫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가장 나빴다. 여성에게도 ‘엄마’ 말고 다른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아빠의 장례가 끝나고 복잡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엄마가 선언했다. “엄마 이젠 살림 안 할 거야. 김치도 안 담글 거니까 각자 알아서 사 먹도록 해. 대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닐 거야. 검정고시 학원에도 다닐 거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엄마의 선언을 지지했다. 아이처럼 설레는 그날의 엄마가 얼마나 예뻤는지, 나는 아주 오래 기억할 것이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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