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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송세영] 가짜뉴스와 미네르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10일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30세의 인터넷 논객 박대성씨가 구속됐다. 그는 2007년 10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약 80개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 남겼는데 누적 조회 수가 730만회 이상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한 무직자였지만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을 예고한 글이 적중해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그의 글을 인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기조에 반대해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면서 권력의 눈 밖에 났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박씨가 미네르바인 사실을 확인하고 ‘정부,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이라는 허위의 글을 올렸다며 전기통신법 위반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해당 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으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전두환정권 때인 1983년 12월 30일 제정됐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기에 이런 법 조항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문가들도 몰랐다.

핵심 문구인 ‘허위의 통신’이라는 표현도 뜻이 모호했다. 박씨에게 들이댄 것처럼 근거 없는 글을 올리거나 주고받는 것으로 해석하면 1988년 폐지된 유언비어 날조·유포죄가 되살아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네티즌들이 줄줄이 전과자가 될 판이었다.

그런데도 법원은 “외환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안”이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진보언론들은 물론 국내외 언론 상당수가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 ‘민주주의의 후퇴’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라며 검찰과 법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제의 조항은 결국 2010년 12월 28일 위헌 결정이 났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형벌 조항인데도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명확성의 원칙을 벗어나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박씨는 앞서 1심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다”는 다른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 동안 국민들의 말과 글, 표현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것만은 아니었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나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때도 정권은 ‘괴담’을 뿌리 뽑겠다며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여론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다. 미네르바가 쓴 글이나 당시 떠돌던 글들이 모두 사실이어서 국민들이 반대한 게 아니었다. 그중에는 요즘 거론되는 ‘가짜뉴스’보다 더한 것들도 많았다.

유언비어나 괴담, 가짜뉴스의 부작용은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나서서 이를 의율하려 하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훨씬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에선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한 경우, 선거에 관여할 의도인 경우 등에만 허위사실 유포의 책임을 묻는다. 그때도 허위인지 아닌지, 고의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나머지에는 공론장을 통한 자율 규제의 원칙이 적용된다. 공신력 있는 언론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번에 가짜뉴스로 지목된 내용에 대해서도 언론이 책임을 지고 철저하고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진위 여부를 가려내야 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보수 정권이 괴담을 처벌하겠다고 나섰을 때 ‘언론과 표현의 자유’ 편에 섰던 이들이 이번에는 유언비어 망국론을 주창하며 엄정 대처를 촉구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사회일수록 유언비어가 활기를 띤다”며 유언비어 유포의 근본 책임을 권력에 돌리던 이들이 이번에는 ‘가짜뉴스 공장’ 탓을 한다. “유언비어에 현혹될 정도로 국민들은 어리석지 않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가짜뉴스 때문에 여론이 돌아섰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라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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