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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타인의 신앙에 대해 말하기



최근 축구해설가 이영표씨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가 쓴 책 ‘말하지 않아야 할 때’의 한 단락을 온라인매체가 기사화하면서다. 비기독교인, 특히 여성들은 아내의 고통을 외면하는 그를 ‘한남’이라고 비난했다. 많은 것이 생략된 글인데다 앞뒤 문맥 없이 다뤄지면서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기독교인들의 반응이었다. 여성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 중에도 그를 향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무지몽매한 신앙인이라 쏘아붙이는 이들이 적잖았다. 그 책보다 한 달 먼저 나온 ‘생각이 내가 된다’ 출간을 기념해 인터뷰를 했던 터라 날이 선 반응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론 보도의 적합성, 출산과 여성의 산고를 둘러싼 여러 논의들, 성경 해석을 둘러싼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중 내 시선이 가서 닿은 곳은 어쩌면 다소 엉뚱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을 보면서 나는 타인의 신앙에 대해 누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보았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와 인터뷰하면서 나는 사람마다 신앙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사실에 새삼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그의 신앙생활은 선수 시절 그가 축구장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모습과 퍽 닮아있었다. 매일 기초체력을 쌓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했던 것처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빼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최고의 선수는 남들이 못하는 어떤 기술을 가진 게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할 것들을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이 꽤 오래 남았다. 꾸준함보다는 벼락치기나 몰아치기에 익숙한 나와 정반대의 모습이라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집요하게 성경을 파고드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해가 안 되는 성경구절이 나오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주변에 묻는다고 했다. 너무 문자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나와도 일단 넘어가버리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느 한 쪽만 옳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신앙생활이란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서 타인은 물론 내 신앙의 상태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게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어떨 땐 누구보다 뜨거운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엔 세상에 이런 냉소자가 따로 없다. 은혜가 넘칠 땐 이런 세상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명성교회, 그리고 가짜뉴스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며 “이러다가 오래 못가지”하며 차디찬 냉소를 뱉어낸다. “절망은 죄라고 생각한다”는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말을 바로 눈앞에서 듣고도 흘려보냈다가, 한참 뒤 어느 순간에 그 글을 떠올리고는 곱씹고 곱씹으며 힘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타인의 입장이나 취향뿐만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는 무섭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무엇보다 관용과 환대를 중시한다고 했다. 본질이 아니라 비본질에 가까운, 전체적으로 조명한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분에 근거한 것을 토대로 같은 기독교인을 평가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비기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두렵다. 페이스북과 뉴스 댓글을 보며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한 줄기 빛같이 위로가 되는 구절이 다가왔다. 비아 출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본 로마 가톨릭 사제 토마시 할리크의 책 ‘상처 입은 신앙’ 속 한 대목이다. “저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그들의 개인적 신앙에 대해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저의 권한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그들 순례의 목적과 종착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에게서 ‘다른 이의 하느님’이 결국 ‘저의 하느님’이라는 희망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믿는 하느님은 또한 제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라는 생각, 다시금 그 생각을 해보고 있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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