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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신창호] 중간선거 앞에 놓인 트럼피즘



11월 6일. 흔히 우리가 부르는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겉으로 보기에 요즘 미국 워싱턴 정가를 지배하는 정치적 주제는 아직 중간선거는 아닌 듯하다. 10대 시절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던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의 취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대북 핵 협상 성과, 거의 전쟁 수준에 다다른 대중 무역압박….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만한 빅이슈들이 워싱턴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유수의 미국 언론을 잘 들여다보면 이 모든 뉴스의 이면에 ‘중간선거’란 단어가 도사리고 있다. 중간선거란 말은 미 대통령의 임기(4년) 딱 가운데 2년을 전후로 실시되는 연방 상·하원 의원선거를 빗대 만들어진 말이다. 2년 전 집권한 행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란 의미다.

전통적으로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드물었다. 1998년과 2006년 선거가 최근 30년간 집권당이 승리한 중간선거로 기록될 뿐이다. “미국인이라면 연방정부에 대한 견제심리를 DNA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소엔 워싱턴을 행정부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간선거를 지나면 상·하원이 모든 정책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중간선거가 역대 어떤 중간선거보다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바로 트럼피즘(Trumpism) 때문이다. 트럼피즘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만들어진 신조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슬로건인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즉 미국우선주의다. 정치적으로는 고립주의,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 사회적으로는 실용주의가 트럼피즘의 뼈대다.

일관된 것 같지만 트럼피즘의 가장 큰 특징은 불연속적, 파격적, 비합리적, 불규칙적이란 것이다. 미국이 먼저 주도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파기 수준에 이를 만큼 뜯어고치고, 불법이민을 막겠다며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가 하면, 옛 소련 붕괴 이후 가장 큰 적대국인 북한과 정상외교를 벌인다. 미국 소비자 물가를 낮춰 서민들에게 낮은 가격에 좋은 생필품을 공급하도록 해준 중국산 상품들에 무역수지 적자란 이유를 내세워 관세폭탄을 때린다.

반(反)낙태와 가정의 가치를 외치는 대통령이 실제로는 두 번 이혼과 세 번 결혼의 경력을 가진 자이고, 수도 없는 성추문이 터져 나오는 데다 여성 비하로 구설에 오른 당사자란 것도 그렇다. 미국이 만들어낸 정치적 민주주의, 외교적 국제주의, 경제 영역의 세계주의(Globalism)는 트럼프의 손에 의해 낡고 쓸모없는 이데올로기가 돼버렸다.

어쩌면 이번 중간선거가 2년 전의 미국 대선보다 오히려 훨씬 더 큰 정치적 함의를 가질 것이며 그 여파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게 정치학자와 언론의 전망이기도 하다. 지금껏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가치에 대해 정면충돌해온 트럼트 대통령이 지지받을지 여부를 확인하는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트럼피즘은 세계 곳곳에 아류를 등장시켜왔다.

공화당에선 연일 이번 선거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모양이다.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의회 지도부는 트럼피즘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는 일에 피로가 쌓인 모양새다. 선거 향배를 미리 전망해볼 수 있는 선행지수인 선거자금 모금도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핵협상에 가속도를 붙이는 것을 두고 이런 불리한 형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도박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중간선거일 이전에 북핵의 완전한 폐기 소식이 전해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 뉴스가 터진다면 다른 모든 이슈를 묻어버릴 수 있어서다. 민주주의에 길이 든 미국인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트럼피즘의 비(非)민주적 가치들에 동의해줄지 지켜볼 일이다.

신창호 토요판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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