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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가



10년 전 처음 교단 총회를 취재했다. 그때의 잔상은 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정치부 기자로 취재하며 봤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교단 정치의 민낯, 권력을 향한 집착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낯설고 낯설었다. 그들이 교회 강단에서 설교하고 성도를 목양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총회 취재하다 실족하지 않도록 더 기도하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교계 기자 사이에서 떠도는 이유를 실감했다.

2018년 9월 어김없이 한국교회 주요 교단 총회가 열리고 있다. 각 교단마다 총회장과 임원을 선출했다. 10년 새 눈에 띄게 추락한 교회 위상 때문일까. 선거를 둘러싼 잡음과 추문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이제 교단마다 신임 임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잠시 지난봄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지난 4월 영국 런던 북서쪽 몰턴에 있는 캐리 침례교회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개신교 역사에서 ‘위대한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가 1785년부터 시무했던 곳이다. 교회 본당 뒤편, 작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시선을 뺏겼다. 십자가와 지도, 그리고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는 글귀가 담겨 있었다. 선교 비전을 다른 이들과 나눌 때 했던 이 말은 캐리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구다. 그는 영국을 떠나 인도에서 선교사로 지내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자녀를 잃었고 정신병으로 아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선교지에서 틈틈이 번역한 성경 원고가 불타 사라지는 일도 겪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오히려 부족한 원고를 고칠 기회를 주셨다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위대한 선교의 역사를 썼던 그였지만 묘비엔 이런 글을 새기도록 유언을 남겼다. “가엾고 비천하며 연약한 벌레 같은 내가 주님의 온유한 팔에 안기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의 리디머교회 설립자 팀 켈러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더랬다. 당시 목회 콘퍼런스에서 한 참석자가 “목사님은 어떤 인물로, 어떤 전설로 남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 가족에게 사랑이 많은 아버지로, 교회에선 사랑이 많은 목사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이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 교회 청년들만 해도 제게 영웅 같았던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도 그렇게 오래 기억되진 않는다”며 “저는 제가 어떻게 알려지거나 기억될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팀 켈러는 지난해 은퇴하고 ‘시티투시티’를 통해 복음적인 교회 개척 운동을 펼치는 세계적인 목회자다. 1989년 뉴욕 맨해튼에서 15명이 시작한 리디머교회는 그가 은퇴할 당시 50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센터처치’ 등의 저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까지 세계 54개 도시에 380여개 교회를 세웠다. 그의 이름 앞에 ‘도시의 전도자’ ‘21세기의 CS 루이스’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한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교회 사역이 잘된 것에 다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에겐 좋은 학벌이나 연줄, 뛰어난 외모 등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모든 사역이 가능했다는 고백이었다.

어느 분야나 많은 권한이 주어지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가 있다. 교단 총회가 교계에선 그런 자리일지 모른다. 그런 곳에 있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착각하기 쉽다. 내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하다보면 남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재계 등과 달리 교단 총회는 사람이 일은 하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다. 일의 동기와 시작이 다르기에 일이 진행되는 과정과 결과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존재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위대한 사람으로 남길 원한다면,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작디작은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윌리엄 캐리와 팀 켈러의 고백은 하나였다.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그렇게 써 주셨습니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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