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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김재천] 김정은의 답답증 해소하려면



기대를 모았던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변함없는 비핵화 의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 확인하고 돌아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한데 진심을 몰라줘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한다. 그가 답답증 해소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치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우선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미국과 협상하고 합의해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핵시설이나 핵물질 일부를 신고하겠다는 확약만 한다면 종전선언을 먼저 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듯하다. 핵 프로그램 전체를 신고하라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신고를 먼저 하라는 것도 아니다. 신고하겠다는 약속만 하라는 것이다. 대화 동력을 살려가려는 트럼프 정부가 상당히 양보하며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의 선후(先後) 문제로 발생한 교착상태는 미국 제안대로 일부 핵시설에 대한 북한의 신고 약속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는 선에서 합의해 타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상징적 선언에 불과하다며 조건 없는 종전선언만 고집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실질적 비핵화 조치라 강변한다면 비핵화 의지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핵 신고’ 합의와 동시에 ‘비핵화-평화체제’ 로드맵 협상에 임한다면 비핵화 의지 확인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내 거의 유일한 김 위원장의 우호 세력이다. 하지만 예측불허 트럼프가 돌변하면 김 위원장도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아마 적절한 시점에 부분적 핵 신고 약속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는 거래를 성사시켜 사면초가인 트럼프를 기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거래 이후에는 어떤 조치들을 언제 맞교환할 것인지 그 어떤 합의도 부재한 상황이다. 북한은 비핵화 과정을 ‘살라미’처럼 잘게 썰어서 자의적으로 취하는 조치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며, 미국과 북한은 그때마다 지금처럼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북한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이런 예측은 합리적 의심이 아닐까. 이런 단편적 접근방식으로 어느 세월에 비핵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나. 미국은 북한의 요구대로 리비아 모델과 같은 ‘원샷 딜’을 포기하고 단계별, 행동 대 행동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방식을 받아들였다. 초동 조치로 제시했던 핵탄두 선(先) 반출 요구도 거둬들였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제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행동과 행동을 언제까지 맞교환할 것인지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에게 트럼프의 첫 임기 내에 북·미 70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완료하겠다고 했다. 비핵화 시한을 제시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북·미 간 관계개선과 평화체제가 선행돼야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전 입장을 반복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북한은 관계개선과 평화체제가 비핵화에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정상 간 합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4·27 판문점 선언 1항은 ‘남북관계 발전’ 방안을 다루고 있고, 비핵화는 평화체제에 관한 3항의 마지막 4조에 언급돼 있을 뿐이다. 3항 3조는 ‘올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전환’ 노력을 천명하고 있다. 정상 간 합의문대로 선 관계개선·평화체제, 후 비핵화 순서로 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격이고 김 위원장의 답답증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된다.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종전선언에 수반돼야 하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무엇보다 조속한 시일 내에 비핵화-평화체제 로드맵 협상에 담대히 나설 것을 종용해야 한다.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인데 김 위원장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듣는 국민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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