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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이런 경직성으로 20년 집권 하겠나



대통령 지지율의 빠른 추락과 늘어나는 부정 평가는
지지기반이던 중도층이 돌아설 채비를 한다는 뜻
‘밀리면 안 된다’는 유연성 결핍과 교조주의로는
절대 이들을 붙잡을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는 치열한 100일의 전투가 될 것이다. 정기국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부터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남북 교류까지 모든 분야에서 보수진영의 치열한 공세가 이어질 것.”(8월 31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의원 워크숍)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입니다.”(9월 1일,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당정청 전원회의)

“다음 총선에서 우리가 아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서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닦는 일이 당이 할 일이다.(9월 1일, 이해찬 대표, 청와대 당정청 전원회의)

대통령과 여권 지도부의 전투적 의지가 돋보였던 지난 주말이었다. 적폐청산, 불의의 시대, 정의, 압도적 승리, 100일 전투. 다 전의를 다지는 표현들이다. 여권의 전투적 의지가 강조되고, 밀려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노골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건 통계청장 전격 경질부터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비판받았던 소득주도성장론이 지난 8월 말 통계청의 이른바 ‘고용 참사’ 수치 발표로 난타당하기 시작했다. 보수 야당과 다수 전문가들은 정권에 대한 공격 지점을 소득주도성장론으로 잡았다. 마치 한 X만 팬다는 전략으로. 대통령과 여권은 통계청장 경질과 대대적인 반격으로 즉답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집중 공격은 현 집권층에 내재돼 있는 참여정부 실패 트라우마를 근본적으로 건드렸다. ‘또 밀려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는 이 트라우마에 대한 거대한 공포감이 있는 듯하다.

이제 소득주도성장론은 단순 정책이 아닌 게 됐다. 경제 선순환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가치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수단이 목적이 돼 버렸다고나 할까. 대통령과 여권은 이 정책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강력한 진지’로 삼을 생각인 것 같다.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이 선출되고, 여야의 새 대표가 뽑히면서 협치 목소리가 나오지만 소득주도성장이란 정책을 구실 삼아 진영으로 확 갈라지는 모습이다. 아마 여권 핵심들 중에는 이런 정치적 상황을 바랐던 이들이 많았을 수 있겠다. 그래야 지지층이 결집하고, 여권의 전투적 의지를 다질 수 있으며, 정권 재창출 같은 정파적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결정적 변수가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조사 결과는 지난달 말부터 50%대 중반으로 떨어져 연일 최저치를 보여주고 있다. 부정 평가도 처음으로 40%대로 올라섰다. 지지율이 40%대까지 떨어진 조사도 나왔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추세와 떨어지는 속도, 그리고 부정 평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은 여권으로선 심각하게 분석해 봐야 할 대목이다. 그 추세와 속도는 소득주도성장 논란과 대충 흐름을 같이한다. 그동안 높은 지지율은 진정성과 인간미 있는 대통령의 개인기와 수준 미달의 보수 정치에서 기인했다. 그 약발은 떨어졌다. 이젠 사람들이 나타나는 성과를 보고, 중간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보수 정치의 품격 낮음에 분노한 중도층 대부분이 합류한 것이 아주 큰 몫을 했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보 보수에 얽매이지 않는 스윙 보터(swing voter)들이다. 급격한 지지율 추락은 이들이 돌아설 채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간 결산을 슬슬 해 보니 뭔가 비합리적인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지지 유보, 철회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은 노무현정부 때의 갈라치기 전략, 즉 강공을 선택했다.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는 100일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적폐청산이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찬성률이 높다. 당연하다. 과거 나쁜 짓을 가려내고, 정의를 세우며, 빈곤층의 소득을 올려 궁극적으로 경제가 선순환되는 성장을 이룩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이거에 반대하면 바로 선의(善意)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의한 사람이 된다. 현실에선 공동이익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떨어지거나,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얘기가 없기 때문에 비판 또는 반대하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윤리의 문제가 도덕적으로 지극히 재난적 역할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소명으로서의 정치, 박상훈 옮김). 자기를 반대하면 불의로 보는 것 말이다. 베버는 선의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치가에게 필요한 두 가지 덕목,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중 책임을 우선했다. 정치는 결과로 무한책임을 지는 행위다. 여권은 20년 집권 플랜을 말한다. 과거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난 경직된 시각과 교조주의로 가능할까. 스윙 보터들을 잡을 수 있을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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