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김정은, 공동번영의 길로 나오라



교착 국면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는 김정은에게 도움 안 돼
남북 정상의 평양회담이 꼬인 비핵화 실타래 푸는 전환점 되기를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단단히 꼬인 형국이다. 종전선언이 먼저라는 북한과 비핵화가 먼저라는 미국의 신경전이 뜨겁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체결되면 자신들을 괴롭혀온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대놓고 요구할 태세이고, 미국은 비핵화의 진전 없이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한·미 방위체제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간극이 크다. 또한 상대의 양보만이 교착국면에서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상대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여가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절충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답답한 북핵 판세를 보고 있노라면, 김정은이 살짝 미소를 짓지 않을까 싶다. ‘내가 호락호락할 줄 알았지?’라며 버티기에 들어가자 거래의 달인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반면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 잔혹한 독재자 이미지를 벗어버린 김정은에게는 ‘녹록지 않은 상대’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시 중단한 한·미 연합훈련 재개 카드를 꺼내들었으나 김정은은 묵묵부답이다. 김정은에게서 아직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가 바라던 대로 한·미 공조에도 이상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북측 경의선 철도 구간을 조사하기 위해 열차를 시범운행하려던 계획이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불허된 건 단적인 사례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비핵화에 맞춰 남북 관계 발전 속도를 조절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열차 시범운행이 단순히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이며, 남북 관계 진전이 비핵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국 간의 미묘한 틈새를 더 벌리려 북측은 미국을 비난하며 남측에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다그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대로)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온 민족이 힘을 합쳐 (미국 등) 내외 반통일 세력들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미국 편에 설 수도 있다’는 사인을 보내면서 중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제재를 완화하도록 유도해 숨통이 다소 트였다. 중국의 제재 완화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 “중국이 북한에 자금과 물자를 지원해 북·미 관계를 손상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는 이유다.

여기에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일본 정부와 비밀접촉을 갖는 등 한·미·일 공동전선을 흔드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생존이 걸린 탓인지 외교가 집요하고 입체적이다. 여기에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협상하는 동안에도 비밀리에 핵탄두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정은이 북핵 판세를 좌지우지하는 배경에는 이런 외교력과 핵무력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 시간표 제출을 마냥 지연시키는 게 과연 김정은에게 유리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나온 건 제재 때문이다. 제재로 가중된 북한의 경제난을 풀기 위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임했다. 그의 관심사 역시 경제개발이다. 제재가 지속돼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 수십년 공들여온 우상화 작업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고,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확산되면 세습독재 체제가 내부에서 붕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제재에 소극적으로 변했지만, 북한 비핵화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감대다.

김정은이 경제개발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를 정말로 원한다면 지금처럼 비핵화에 소극적으로 임해선 안 된다. ‘김정은이 정말 비핵화에 나섰구나’라는 확신을 국제사회에 심어줘야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이미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규모 경제 지원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그리고 인도와 아세안까지 연결된 공동번영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북한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체제 안정,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다.

남측 대북특사단이 5일 방북하고, 남북 정상이 이달 중순쯤 평양에서 만날 예정이다. 김정은이 이 자리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케케묵은 레퍼토리를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남북은 물론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해 꼬인 비핵화의 실타래를 과감하게 푸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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