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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양기호] 결코 대등하지 않은 미·일관계



지난 6월 7일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인사들은 귀를 의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나는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일갈한 것이다. 일본이 적국이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공습에 미군 2400명이 전사한 뒤 ‘진주만을 잊지 말자(Remember Pearl Harbor)’는 미국인들의 대일 전쟁 구호였다.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적어도 동맹보다 통상이 우선순위가 높은 것처럼 보인다.

6월 8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통상문제로 언쟁하던 트럼프는 더 심한 말을 던졌다. “(아베) 신조, 멕시코 이민자 2500만명이 미국에 들어와 있다. 내가 만일 일본에 멕시코 이민자를 전부 보낸다면 당신은 퇴진해야 할 것이야”라고 한술 더 뜬 것이다. 7월에는 일본이 베트남에서 몰래 북한과 비밀 회담을 가진 것에 미국은 또다시 불쾌감을 표시했다.

미·일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통상 마찰과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갈등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대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하지만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소비층이 줄어드는 일본은 태평양 시장 확대에 필사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자간 협정을 거부하고 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모두 부정적인 입장이다. 미국은 작년에만 689억 달러의 대일 무역적자를 맛보았다. 미국은 자동차와 소고기 수입을 늘리라고 하지만 일본은 거부한다. 화가 난 미국은 철강 관세 부과를 결정했고, 자동차 관세도 추가할 기세다. 일본 정부는 무역보복을 하겠다고 반발했다.

트럼프의 일본 때리기 발언에는 사업가 시절의 반일 DNA 낙인이 찍혀 있다. 부동산업자로 잘나가던 1980년대, 뉴욕 빌딩을 마구 사들이던 일본은 트럼프 회장에겐 경쟁자였다. 실제로 1989년 일본 미쓰비시 부동산이 뉴욕 록펠러 빌딩을 구매하자,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다. 2016년 8월 선거전이 한창일 때 일본 방위만 책임지는 미·일 동맹은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진영의 일본 때리기가 거듭되자, 멕시코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려던 도요타는 1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 비핵화도 미·일 갈등이 예고돼 있다. 미국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철거를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핵과 미사일, 납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절대 대북제재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납치자 문제도 북·미 정상회담에 의제로 올리라고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다. 급한 불을 꺼야 하는 미국에 일본은 그야말로 성가신 존재가 되고 있다. 무역마찰과 시장개방, 주일미군 비용 분담 등 미국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요구만 하는 일본에 미국은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일본도 할 말이 많다. 대미 무역흑자가 많지만 상당 부분 미국에 재투자하거나 미국 국채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중단거리 미사일 보유는 일본의 안보에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다. 미국이 ICBM 폐기 대가로 북한 핵 보유를 용인할 경우 최악이 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절대적 외교 숙제인 납치자 문제도 국제 이슈화해 해결하려는데 미국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 야속한 심정이다.

9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아베에게 미·일 갈등은 악재다. 현재로선 압승 가능성이 높지만, 라이벌인 이시바 후보는 토론회에서 쟁점화할 것이다. 설사 당선되더라도 내년 소비세 인상에 대한 국민적 조세 저항, 헌법 개정에 대한 여야의 반대를 돌파하는 것도 아베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미국이 일본 총리를 흔들어대면 정국 운영이 어렵다는 것은 일본 정치가나 국민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치와 이념, 이익을 전적으로 공유한다지만 미·일 관계는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그것을 일깨워준다.

양기호(성공회대 교수·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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