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기억의 편향



기억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현재의 감정 상태로 인해서 과거를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 기분이 우울할 경우 살면서 내가 잘못했거나 남에게 손해를 봤던 기억 등 부정적인 사건을 더 떠올린다. 우울한 사람에게 긍정적 단어와 부정적 단어를 같은 개수로 불러준 뒤 잠시 후 그것을 기억해내라고 하면 신기할 정도로 부정적 단어부터 기억해낸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뇌가 하는 일이다.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거나 발표 상황을 불안해하는 사회불안장애 환자의 경우 중립적인 표정의 사진을 봐도 그 얼굴 표정을 화난 표정으로 기억한다.

한편 우리 뇌는 긍정적인 기억에만 치우치기도 한다. 산모는 출산 단계의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분비되기 시작하는 옥시토신으로 아이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고 통증을 잊으며 출산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고통과 공포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출산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강한 긍정적 기억은 앞선 부정적 기억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런 합리화는 우리가 힘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인간의 뇌는 현재에 맞춰 끊임없이 과거를 수정하겠지만, 사회는 개인의 뇌와는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억하고 싶은 대로 하는 뇌와 달리 역사를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데 있어서 적어도 기억의 편향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삼일절과 광복절의 경우 그 의미에 대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았지만, 국치일인 8월 29일과 같은 아픈 역사는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물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슬픈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거나 화려하게 기념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강대국들이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에 대해 눈감아줬다는 것, 다른 강대국이 지배함으로써 자기가 위협받는 것을 걱정해서 보호를 빌미로 약한 나라를 간섭하는 것은 21세기인 지금도 반복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주원(의사·작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