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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원재훈] 다리와 길



경기도 일산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하기 위해 장항IC를 빠져나올 때 곡선으로 이어진 고가다리의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강북에서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한남대교를 건널 때도 그런 경험을 한다. 다리는 도로와 도로를,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유적으로 보자면 인간과 인간이 이어지고, 정신과 정신을 이어주는 역사의 의미도 있다. 다리는 결국 인간의 형상화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초인에 대해 알려주겠다. 인간은 극복돼야 하는 어떤 것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교량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에게 말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혼돈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무리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내가 왔다.”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니체의 일성은 인간은 어디론가 가는 존재이고, 잘만 가면 초인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노자 중심 사상인 도(道)와도 연결된다. 니체의 다리와 노자의 길이 서로 같은 방향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지곤 한다.

지난 14일 이탈리아 제노바 모란디 다리가 무너져 4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변을 당한 사람들의 심경은 짐작하기 힘들고, 아니 짐작할 수도 없다. 당연히 우리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성수대교 붕괴를 생각하게 되고, 모란디 다리와 성수대교는 또 다른 다리로 연결된다. 이 역사의 다리는 고통스럽다. 다리는 하늘에 떠 있는 길이다. 인간의 안전한 보행과 통행을 보장하는 다리가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도 우리는 중요한 다리를 건너려고 한다. 남북이 판문점에서 통일의 다리를 만들려고 한다. 남북 가족 상봉은 부서진 지나간 세월의 다리를 복원시키고 있다. 여야는 새 당대표를 선출하고 협치라는 다리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이때 니체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목적이 아니라 다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리가 돼야 한다고.

또한 서울시장은 강북과 강남을 이어주는 한강의 수많은 다리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낙후되지 않은 지역의 낙후성도 생각해야 한다. 물질과 정신의 낙후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즉 목적이 아니라 다리 자체가 돼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목적지로 이동할 수가 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노바의 모란디 다리가 무너진 것은 다리의 설계 결함과 더불어 민간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고속도로의 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사고의 원인은 아주 복잡하다. 그래서 돋보기를 갖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는 이권에 좌지우지, 좌고우면하지 않는 도덕성과 순수한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럴 땐 누군가가 우리를 이끌어주면 좋겠다.

나는 지금 파주 출판도시의 ‘응칠교’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응칠’은 안중근 장군의 아명이다. 출판도시가 만들어질 무렵 이곳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를 연결시키는 의미를 담고, 안중근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자 이기웅 이사장이 제안했고 건축가 승효상씨가 만든 작품이다. 안중근 장군은 출판도시의 모든 건축물에 정신의 감리자로 아직까지 건재하다. 우리의 역사가 이 다리에서 새롭게 탄생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건너고 있다. 아주 견고하고 아름다운 다리다. 이 도시의 작품이자 정신이다. 세상의 모든 다리는 작품이 돼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길이 나온다. 길은 다리에 비해 무너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허물어질 수는 있다. 다리와 길은 끊임없이 다시 정비되고 관리돼야 제 기능을 회복한다. 우리 삶의 가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살면서 갖고 있는 가치는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빛나기 마련이다. 가치와 가치 유지는 다리와 길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제 여름은 서서히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유난스러웠던 폭염의 다리를 무사히 건너온 우리들 앞에 서늘한 길이 나타났다. 당신이 걸어갈 그 길이 순탄하기를.

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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