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데스크시각-남혁상] 작은 인류애를 보다



전 세계가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태국 탐 루앙 동굴 속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팀 소년들이 모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고립 17일 만에 해피엔딩으로 마침표를 찍은 기적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실종 열흘 만에 소년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수천㎞의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날아온 영국인 동굴 탐험가 2명이다. 이들은 길이 5㎞가 넘는 동굴 속을 잠수하고 때론 바닥을 기면서 수색한 끝에 13명의 생존을 확인했다.

소년들 구조에 직접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영국은 물론 벨기에 핀란드 덴마크 국적인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섰다. 헬멧에 부착된 라이트 하나에 의지한 채 흙탕물로 가득 찬 동굴을 헤치고 아이들을 무사히 구출했다. 동굴 안에서 전원이 구조될 때까지 일주일간 소년들 곁을 지키며 보살폈던 의사는 호주 출신이다.

중국 필리핀 미얀마 라오스 등지에서 파견된 민간 구조대원들의 역할도 컸다.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들, 태국 해군 특수부대원들도 빠질 수 없다. 구조작업에 참여했다 숨진 태국 해군 네이비실 출신의 사만 푸난은 살신성인의 고귀함을 보여줬다. 소년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하고 음식을 양보했던 25세의 젊은 코치는 가장 마지막으로 나왔다. 구조대원과 생존자들 모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긴박하고 감동적인 장면은 그대로 전 세계로 날아들었다.

이보다 앞서 지구촌에는 또 다른 작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해졌다. 시리아의 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8살 소녀 마야의 이야기다. 소녀 마야는 시리아 내전의 최대 격전지인 알레포 출신이다. 집은 내전의 포화 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으로 두 다리가 없었던 소녀는 난민 캠프에서 내내 통조림 캔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움직이기 위해선 의족이 필요했지만 난민 형편에 의족은 사치였다. 마야는 줄곧 “걷는 게 꿈”이라고 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통조림 캔 속에 헝겊조각을 채워 의족을 만들어줬다. 걷는 흉내를 내긴 했지만 손과 팔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고, 고통이 심할 땐 기어서 학교를 가야 했다. 이런 소녀 이야기가 알려지자 지구촌의 온정이 답지했고, 마야는 얼마 전 터키의 한 병원에서 진짜 의족을 달 수 있었다. 소녀는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감사의 뜻을 전한 아버지와 소녀에게 의료진은 “아버지의 사랑이 기적으로 이어졌다. 세계가 시리아 내전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현재 지구촌은 난민과 경제적 이주민, 불법 이민자 문제로 들끓고 있다. 난민 위기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공포, 대규모 실직에 대한 우려로 재생산되면서 유럽의 정치 안보지형까지 바꿀 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난민이 첫 발을 디딘 국가에 난민 신청을 하고 이 나라가 수용한다는 더블린 조약도 위기에 봉착했다. 3년 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3살 아기의 시신, 계속되는 난민 구조선 입항 거부, 최근 17년간 지중해를 떠돌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난민이 3만명에 달한다는 소식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전 세계에 강제이주민 수가 6850만명에 달하는 지금 전 세계 국가들에 톨레랑스의 정신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기는 너무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시대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태국 동굴 소년들과 시리아 난민 소녀의 이야기는 평범한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기적이자 희망찬 소식이었다. 내전과 차별, 테러와 난민, 무역전쟁과 영토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에서 민족과 문화, 종교, 언어, 인종, 국적을 초월해 보여준 평범한 영웅들의 행동은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겨줬다. 배척과 차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 인류애를 조금이나마 다시 볼 수 있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래저래 어두운 소식이 넘쳐나는 지구촌에서 잠시라도 마음을 밝게 해줄 뉴스를 많이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남혁상 국제부장 hsna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