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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권혜숙] 비자발적 고독한 미식가



월간 ‘먹방뉴스’라는 게 있다면 이번 호 메인 기사는 단연 지난달 방송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국 출장 편과 ‘나 혼자 산다’에서 선보인 걸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의 곱창 3인분 혼밥(혼자서 밥 먹기)일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TV도쿄에서 7년째 방송 중인 인기 드라마다. 중년의 주인공이 일을 하다가 식당을 찾아 혼밥을 하는 내용이 전부다. “배가 고프다”로 시작해 “잘 먹었습니다”로 끝나는 먹방이 핵심. 국내에도 팬이 적잖은데, 한국으로 출장 와서는 서울에서 돼지갈비를, 전주에서 비빔밥과 청국장을 먹었다. 주인공은 독신이자 1인 오퍼상 대표로 언제나 ‘나홀로’이지만 드라마에 ‘고독’이라고는 한 톨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냥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혼밥을 만끽할 뿐이다.

화사도 마찬가지다. 스물세 살 아가씨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대낮 곱창집 야외 테이블에 혼자 앉았다. 먹는 데 걸리적거리는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곱창구이부터 곱창전골, 볶음밥까지 해치우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이후 몰려드는 손님으로 전국 곱창집 재료가 동났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이 장면 하나로 빅 데이터를 분석해 매기는 연예인 브랜드 평판 걸그룹 부문 1위에 올랐다고도 한다.

그런데 혼자서 밥 잘 먹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인기를 끌 일이었던가. 10년 넘게 ‘기러기 엄마’ 생활을 했다는 탤런트 김영란씨는 사무치는 혼밥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무작정 집 근처 사우나에 반찬을 싸 들고 가 카운터에 있는 이모, 세신하는 언니, 일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고 했다. 반려견과 단둘이 사는 박원숙씨는 “거울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혼밥을 영양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지 않은 신호로 해석한다. ‘미식물리학’을 창안한 영국 학자 찰스 스펜스는 혼밥은 건강한 음식을 먹을 확률을 낮추고 비만의 위험을 높이는 등 신체와 정신적 안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글 잘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혼밥 문화는 인간관계가 파편화되는 사회적인 위기”라고 평했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역시 “혼밥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사인”이라며 부정적인 해석을 내렸다.

반면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함께하는 쾌락’과 ‘홀로인 의미’를 구별하면서, 혼자가 갖는 ‘의미의 행복’을 이야기했다. 식사에 대입하자면 ‘함께 먹는 즐거움’과 ‘혼밥이 갖는 자유의 의미’라고나 할까. 그는 의미를 중시하는 태도가 즐거움을 중시하는 태도보다 삶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혼밥을 하는 사람은 자신감과 성취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다. 음식 비평가 제이 레이너는 ‘혼자 먹는 저녁이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바로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식사’라는 자기애 충만한 평을 내놓았다. 단순하게 보면 언제 어디서나 혼밥을 가능하게 하는 동반자, 휴대전화야말로 혼밥 대중화의 일등공신이 아닐까.

상황이 이렇긴 해도 ‘자발적 혼밥’이 완전히 대세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 시장조사 전문 기업이 지난달 내놓은 설문 결과에 따르면 혼밥의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71.7%, 중복응답)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이 번거롭고’(25.1%), ‘밥을 먹을 때만큼은 주변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22.3%)는 응답도 많았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혼밥 해야하는 ‘비자발적 고독한 미식가’가 될 때는 시인 고운기씨가 추천한 비빔밥을 권한다.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한 게 없다/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려져/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적막한 시간의 식사/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권혜숙 문화부장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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