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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천지우] 페더러 순간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1962∼2008)는 2006년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 관전기를 쓰면서 ‘페더러 순간’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위스 출신의 대회 우승자 로저 페더러의 놀라운 플레이에 입이 벌어지고 눈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페더러는 엄청나게 빠르고 강하게 공을 때리면서도 누구보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터치하는 희귀한 선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완벽에 가까운 테니스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종목에서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미국)이나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미국), 아이스하키의 웨인 그레츠키(캐나다) 정도는 돼야 ‘아무개 순간’이란 표현이 허락될 것이다.

페더러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다른 스포츠 선수로 조던과 축구의 지네딘 지단(프랑스)을 꼽았다. 지단을 가리켜 “아주 느긋하게 뛰는 선수”라며 “열심히 뛰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다지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 ‘아무개 순간’이라 이름 붙일 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제대로, 순조롭게 진행돼 마침내 갈등 상황이 종식된다면 운전대를 잡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 실력은 격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문재인의 코너링 순간’이라는 식으로 기록될 수 있겠다.

지난달 23일 별세한 ‘정치 9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어떨까. 바둑에서 9단이면 입신(入神), 즉 신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뜻하므로 JP가 정치 분야에서 페더러 급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가 한국 정치의 투톱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보여준 합종연횡은 현란하기는 했다.

하지만 JP가 페더러라니 왠지 많이 어색하다. 정치인생 대부분을 권력의 핵심 부근에 있기는 했지만, 끝내 일인자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고 그가 남긴 폐단과 허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페더러 급은 너무 과하다. 잘 쳐줘도 이반 렌들(체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렌들은 페더러가 등장하기 전 파워와 끈기로 1980, 90년대를 풍미했던 선수다. 월리스는 렌들의 경기를 “굉장하기는 했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물론 정치인과 스포츠 선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제한된 공간과 룰 안에서만 펼쳐지는 스포츠와 달리 정치는 워낙 개입되는 요소가 많아서인지 플레이어나 플레이 자체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기가 정말 어렵다.

저명한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의 저서 ‘만들어진 승리자들’에 나오는 정치인의 성공 비결만 봐도 그렇다. 슈나이더는 정치인이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뻔뻔하게 자기중심적이면서 목표를 위해선 어떤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아야 성공 확률이 높다고 했다. 또 인간과 현실을 간파하는 안목, 어떤 고통과 패배에도 끄떡없는 강심장과 평정심, 자신에게 유리한 순간에 대해 깨어 있는 본능도 성공에 필요한 특질로 제시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서독의 초대 총리를 맡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부흥을 이끈 콘라트 아데나워(1876∼1967)가 전형적인 사례다. 슈나이더에 따르면 아데나워는 자기중심적이고 무자비한 전사였고 현실감각을 타고났으며 근거 없는 비방과 권모술수에도 능했다.

아데나워도 페더러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25살이던 2006년 일인자였던 페더러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테니스 황제다. 그는 지난 1월 호주오픈 남자단식 준결승에서 직전 경기까지 펄펄 날던 정현(22·한국)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제압했다. 발바닥 물집이 심해진 정현이 경기 도중 기권하자 페더러는 “부상을 안고 뛸 때 얼마나 아픈지 안다”고 안타까워하며 정현을 격려했다. 그는 결승전에서도 이겨 메이저 대회 20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바라기 어렵지만, 페더러처럼 우아한 정치인이 나온다면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겠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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