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나는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



요즘 시간이 나면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몇 개 골목을 지나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 중 하나다. 언젠가 그 길을 모티브로 짧은 에세이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기도 하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미국 실험영화의 대부라고 소개되는 ‘요나스 메카스’ 전시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사적이고 실험적인 영상들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지만 그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의 영화에는 반전과 스펙터클이 없다. 실험영화 특유의 충격적인 이미지도 없다. 장면은 자주 끊기고, 영상은 흔들리고, 내레이션은 거의 일기를 읽는 것만 같다. 그렇다. 그의 영화들은 일명 다이어리필름이라고 한다.

그는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탈출해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16미리 볼렉스 카메라를 구입한 후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거나, 당대의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장면들을 별다른 기교 없이 찍었다. 모든 순간이 삶의 섬광이라고 생각하며 카메라의 눈으로 빛을 끌어모았다. 일단 찍고 편집 과정에서 그날에 대한 소회를 내레이션으로 담아냈다. 그의 영상에는 백남준과 앤디 워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담겨 있다. 9·11 테러 장면을 자신의 집 지붕에서 촬영한 후 ‘오래된 동화’라는 슬픈 목가의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2011년에 만든 ‘서신교환’에서는 영화감독 ‘호세 루이스 게린’과 영상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서로 자신의 일상과 사회적 이슈로 안부를 묻고 영화에 대한 우정을 나눈다. 요나스는 말한다. “무엇 때문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그의 영화를 보러 몇 번 더 미술관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개인 웹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영상을 올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것은 2018년 1월 20일이다. 그는 계속 무언가를 보고 있고 찍고 있다. 그리고 말하고 있다. 지금 그의 나이는 95세이다.

글=김태용(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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