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강릉 여행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강릉에 다녀왔다. 20대 후반에 입학한 문창과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뒤늦게 합류한 어린 친구가 있지만 비슷한 나이대와 술을 좋아한 것 말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다. 문학을 보는 시선과 삶에 대한 신념도 달랐다. 이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강릉 가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채팅방을 만들고 일상의 피로함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곤 하는데 이년 전부터 계획한 강릉 여행을 드디어 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릉으로 삶의 자리를 바꾼 H형을 보러 간 것이다.

뭔가 들뜬 기분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목발을 짚고 다리에 깁스 보조기를 끼고 있는 H형의 웃음이었다. 며칠 전 운동을 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수술을 받은 것이다. 마침 가족이 외국의 친척 집에 가 혼자 지내고 있었다. 강릉에 왔으니 덜 알려진 좋은 풍경과 식당으로 자유롭게 안내하고자 한 계획이 무산된 것에 아쉬워하는 H형의 표정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던지면서 놀리곤 했다. 바다의 파도와 함께 해변의 모래를 찍어 누르는 목발 소리가 귀를 열게 만들기도 했다.

H형의 집에서 늦게까지 자리가 이어지자 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높아지려 할 때마다 저마다 실없는 개그로 분위기를 깨고 평정심을 유지하곤 했는데, H형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같다.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내가 이렇게 말했던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최근에 글쓰기의 블록 현상을 자주 겪는 나 역시 그 말이 얼마나 뼈아픈 말이라는 것을 안다. 잠자리에 들기 전 H형의 책장을 보았다. 오래 전 합평 수업 때 만든 창작집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지난 시절의 부끄러운 흔적들 같아 버리거나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는데 그것들을 다시 마주하고 만 것이다. 잠자리에 들어 옆에서 코를 고는 친구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꾸만 몸이 책장 쪽으로 틀어지곤 했다. 시간의 겹에 쌓인 잊힌 언어들이, 언어의 속삭임이 잠든 귀를 다시 열게 만드는 밤이었다. 다른 친구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김태용(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