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착하고 깊은 숲



제주에는 돌이 많다. 그 말은, 흙이 적다는 뜻이다. 식물이 살아갈 터전이 절대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는 푸르다. 푸른 식물들은 어떻게든 어디에든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시멘트 바닥에 싹을 틔운 민들레에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제주에서는 가슴을 움켜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곶자왈에 가봐야 한다. 곶자왈은 돌투성이 땅에 형성된 숲이다. 나무들은 돌 위에 뿌리를 내린다. 깊게 내리지 못한 채 옆으로 뒤틀리고, 땅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간신히 돌을 붙들고 선 나무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슬아슬할까. 거센 바람이 얼마나 무서울까.

며칠 전 동백동산이란 곳에 처음 가보았다. 동백꽃 만발한 작은 동산을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이상 걸리는, 내가 본 중 가장 신비한 원시 느낌 물씬한 곶자왈이었다. 왜 ‘착하고 깊은 숲’이라는 멋진 뜻의 마을이름 ‘선흘’ 대신 그 이름을 썼을까. 그곳에서는 다른 숲보다 쓰러진 나무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중 산책로 바로 옆에 넘어진 채 뿌리를 드러낸 작은 나무 하나가 유난히 내 눈을 붙들었다. 무차별 가위질당한 실타래처럼 자잘하게 무성한 뿌리에 돌들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모양이 너무나 애잔해 보였다. 제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돌,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가 보지만 자신을 깊이 받아들여주지 않는 돌, 그래서 자신을 쓰러지게 만든 돌. 그 돌을 나무는 그 가느다란 뿌리로, 뿌리 뽑힌 뒤에도 부여안고 있다. 나는 잠깐 울컥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계속 마음속을 맴돈다. 지금까지 그 애잔함과 울컥함의 정체를 표현할 말을 찾고 있다. 애증 끝의 장렬한 공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의 조건에 대한 전면적인 수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는 죽고 썩으며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될 때쯤 그 돌을 놓아줄까. 돌은 제단이고 나무는 희생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서없는 생각으로 글은 어지러워져 가고, 나는 맺을 말을 찾지 못한다. ‘착하고 깊은 숲’이 뭔지 큰 숙제를 던져준 것 같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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