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누구에게나 구체적인



모임의 가장 노련한 진행자는 음악이다. 나는 가끔 의도적으로 윤종신의 노래를 선택하는데, 그의 노랫말이 대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언어의 조탁 솜씨 때문에, 모두가 동시에 조용해졌다가 방금 우리가 들은 부분에 대한 상념을 나누게 된다. 상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가 작사한 ‘상념’도 가끔 튼다. ‘나를 버리고 떠나가버려 상념 상념 상념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니 상념 상념…’ 그 노래를 처음 들어본 C는 재차 제목과 노랫말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념이 아니네.” 그래, 그런 거다. 문맥상 상념보다는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상념’이 등장할 때마다 듣는 사람은 어떤 위장의 묘미를 느끼는 것이다.

언젠가 L은 윤종신의 ‘1월에서 6월까지’를 들려주며 나를 관찰했는데, 나 역시 L이 밟았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갔다. 애절하게 듣고 있다가 끝 무렵에 오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던 것이다. 감정이 고조된 지점에 놓여 있던 ‘지하상가 그 덮밥집도’ 때문이었다. 덮밥이라는 구체적인 메뉴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느낌이었는데, 감성적인 이별 노래에 흔한 어휘는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윤종신이 왜 하필 ‘덮밥’을 선택했을까가 궁금했다. 덮밥은 ‘반찬이 될 만한 재료나 요리를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으로 풀이되고 있고, 기원이 오래된 음식이며…. 여러 정보 속에서 눈에 들어온 건 덮밥이 비상시 전투식량으로 통한다는 거였다. 물론 노랫말 속의 그들이 그런 의미로 덮밥을 선택한 건 아니겠지만.

이윽고 덮밥 대신 다른 말들을 넣어보기 시작했고 이런 결론을 얻게 됐다. 이별 노래에 어울리는 메뉴는 따로 없다는 것, 그래서 이별 후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게 떡볶이일 수도 있고 떠먹는 피자나 삼겹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연애는 누구에게나 구체적이니까. 덮밥은 아마 TV에 소개된 맛집이었을 수도 있고, 데이트 동선상 편한 집이었을 수도 있겠지. 우리는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의 동선을 상상해 봤다. 이 과정 모두가 윤종신 노래의 큰 그림이구나, 하면서.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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