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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통일의 마중물’ 탈북민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더라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자 사명이 다릅니다. 요셉은 70명의 자기 부족을 민족 국가로 세우는 일, 모세는 출애굽,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입성,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가 사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단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부르심은 무엇일까요. 통일과 북한선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가서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탈북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3만여명의 탈북민이 있습니다. 입국 당시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했던 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를 떠납니다. 한국교회는 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 인구의 0.1%인 탈북민도 품지 못하면서 2500만 북한 동포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저는 1995년부터 탈북민 사역을 했고, 10년 전 통일을 꿈꾸는 남북한 청년이 함께 모이는 물댄동산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습니다. 통일은 영토·제도·사람의 통일로 완성됩니다. 우리 교회에선 통일의 마지막 단계인 ‘사람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탈북민은 우리와 너무 달라 사역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름이 넘지 못할 벽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처럼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북한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지식 없이 열정만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둘째 북한을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주체사상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우상화·신격화하는 북한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없습니다. 셋째,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탈북민으로부터 상처받고 그만두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한 종(servant)의 자세를 지니는 것입니다. 탈북민의 외모가 초라하다고 무시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몇 년 전 기독교 통일학회 세미나에서 탈북 신학생이 “남한 성도들이 ‘예수 믿으라’는 말만 하지 말고 삶을 통해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5절 말씀처럼 겸손하게 종의 자세로 섬길 때, 그들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통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니느웨 백성 12만명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인간보다 못한 삶을 사는 2500만명의 자기 백성을 그냥 두실 리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통일을 주실 것으로 믿고, 저부터 더욱 낮은 종의 자세로 북한 선교의 마중물인 탈북민을 섬기겠습니다.

조요셉 목사(서울 물댄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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