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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손병호] 트럼프의 화수분, 북한



‘오버쟁이’ 미국 케이블 방송 CNN을 보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차례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것 같다. 조그만 일도 대단한 일인 것처럼 보도하는 통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농담이나 과장된 표현도 선전포고처럼 들리게 한다. 걸핏하면 서울과 일본특파원을 생중계로 연결하거나, 입심 좋은 패널들을 출연시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런 식의 보도는 진보성향 CNN뿐 아니라 보수성향 폭스뉴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호들갑에 가장 신이 난 건 트럼프다. 그에게 북한 핵과 미사일은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십조를 거두기 좋은 재료다. 꼭 그를 위한 화수분같다. 트럼프는 북핵으로 미 국민의 시선을 확 돌려놨다. 그 사이 탄핵까지 거론됐던 ‘러시아 유착 의혹’은 쏙 들어갔다. 간혹 스캔들 수사 얘기가 나와도 북핵 뉴스에 금방 덮인다. 북한 김정은은 ‘사학 스캔들’에 휘청거리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뿐 아니라 트럼프까지 살려냈다.

트럼프는 미국 외교의 목표 중 하나인 ‘중국 깔아뭉개기’에도 성공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목덜미를 제대로 잡았다. 외교에 있어 상대가 잘못했다고 느끼게 하거나 빚을 졌다고 여기게 하는 게 가장 큰 무기인데, 지금은 중국이 대북 제재 문제로 미국에 무슨 대단한 잘못을 한 것처럼 돼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북한 문제를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메우는 지렛대로도 쓰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을 구실 삼아 국방예산도 대폭 늘렸다. 미 상원은 지난 18일(현지시간) 7000억 달러(약 791조원) 규모의 내년도 국방예산을 통과시켰다. 올해 6190억 달러보다 10% 이상 늘었다. 국방예산 확충은 트럼프의 대선 핵심 공약이다. 공화당의 주지지층인 현역 군인과 제대군인, 그 주변 친인척 등을 겨냥한 약속이다.

트럼프의 세일즈 외교도 북풍을 제대로 탔다. 한국 일본 호주 대만 등의 동맹국에 막대한 군사 장비를 팔 명분을 확보했고, 어쩌면 ‘강매’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미국 경제를 좋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공화당의 돈줄인 방산업체들을 배불려주는 일이다.

미국과 트럼프에게 글로벌 리더 지위를 회복시켜준 것도 북핵이다. 이전까지 글로벌 정치는 러시아 제재, 시리아 문제, 난민 문제, 테러 문제 등을 둘러싸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그런 메르켈은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렸다. 하지만 트럼프는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로 미국의 글로벌 위상이 한껏 주저앉은 상황에서 북핵 하나로 대반전을 이뤄냈다. 지금은 트럼프 주도의 대북 제재에 온 세계가 따라가는 모습이다.

북핵 문제는 현재의 대치 양상이 계속 이어져도, 반대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돼도 트럼프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대화가 이뤄지면 “내 압박 작전이 통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북핵은 크게 손해 볼 게 없는 꽃놀이패다. 그런 패를 쥔 트럼프에게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낚이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그의 북핵 발언을 절반쯤 꺾어 들을 필요도 있다. 누구는 꺾어 듣고, 누구는 곧이곧대로 듣다보니 외교안보 라인에서 혼선이 생긴 것이다. 또 북핵이나 북한의 위협, 김정은의 말폭탄도 상수(常數)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언론, 특히 방송 매체들도 차분히 전달해야 할 정보조차 엔터테인먼트인양 요란스럽게 떠벌려 전하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식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에게 가장 비판적이던 CNN이 이런 식의 보도로 트럼프를 가장 많이 돕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도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 각 진영이 지향하는 바가 없지 않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미국의 장단에 놀아난 꼭두각시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내년에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한다. 앞으로 북핵으로 챙길 수 있는 건 죄다 챙기려 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냉정함’을 무기로 대응해야 한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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