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산책의 이유



그날 공항에서 나는 C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저기 C를 닮은 반쪽짜리 무언가가 있긴 했는데 설마 C는 아니겠지…. C였다. 겨우 며칠 사이에 C는 반쪽이 되어 있었다. 과로와 과음으로 목소리가 안 나올 지경이었고, 이쯤 되면 그녀가 여권을 챙겨온 게 신의 가호라고 봐야 했다. 우리의 여행은 공항에서 약을 사는 것으로 시작됐다. C는 나만 믿었고, 나는 여행 가이드북만 믿었다. 출간된 지 3년이 넘은 여행 가이드북이었지만 뭐 얼마나 바뀌었겠어, 하고. 목적지는 중국 상하이였다.

도시의 3년이란 긴 시간이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에 가기 위해 호텔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간 뒤 다시 택시로 갈아타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그건 더 이상 일반적인 루트가 아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그 앞에 떡하니 지하철 출입구가 보이는 식이었으니까. 분명 지하철이 닿지 않는다고 읽었기 때문에 택시로 갈아탄 건데. 목이 아픈 C가 종이에 뭘 적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여기 상하이 맞나?’ 그 말에 황급히 불안해진 나는 대체 또 뭐란 말인가. 살펴보니 가이드북에는 지하철이 9호선까지만 있었는데, 3년 사이에 새로 몇 개 노선이 더 뚫려서 전혀 다른 도시가 된 거였다. 새 교통체계로는 호텔에서 지하철 타고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고, 우리는 그 10분을 굳이 택시비를 더 들여가며 30분으로 불렸던 것이다. 돈, 시간, 체력을 다 허비한 셈이지만 여행의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실수와 실패의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것. 지금 그 여행을 떠올리면 옛 지도를 들고 ‘돌아갔던’ 동선만 또렷하다.

생각해보면 길에 정답이 어디 있고 오답이 어디 있겠는가. 최단경로, 최소비용, 효율적인 동선…. 어쩌면 우리가 기계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었던 말들이 지금 우리를 다그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최장경로, 최대비용, 산만한 동선을 가진 길들도 우리의 선택지 위에 있고, 그걸 굳이 외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길은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게 우리가 ‘산책’이란 걸 하는 이유일 테니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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