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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손영옥] 빗물 모아 반구대 암각화 사랑



얼마 전 울산시 공무원으로부터 ‘시장님 특별 관심 사항’이라는 당부의 글과 함께 홍보자료를 받았다. 이메일에는 ‘무개념 문화재청 울산 문화재 보존 방식’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달렸다. 문화재청 심의기구인 문화재위원회가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 방안으로 울산시가 제안했던 생태제방안을 부결시킨데 대한 울분의 반박 글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주변에 조성된 사연댐 탓에 1년 중 8개월은 물에 잠겼다 갈수기에 드러났다 하기를 반복한다. 이 바람에 커다란 바위에 풍속도처럼 새겨진 선사시대 고래 사냥 그림은 점점 떨어져나가고 희미해진다. 훼손을 방지할 대책은 결국 암각화가 물에 닿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되지만 울산시는 물 부족을 내세워 반대한다.

울산시가 마련한 생태제방안은 암각화 앞에 기다란 둑을 쌓자는 것이다. 제방을 쌓으려면 바닥을 시멘트 같은 충전재를 강제로 넣어 다지고, 암각화 반대편은 땅을 파 새 물길을 조성해야 한다. 공사 과정에서 바위의 그림이 떨어져나가는 등 암각화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신석기 시대 암각화 앞에 21세기의 거대한 인공 조형물이라니. 울산시가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무산될 게 뻔하다. 부결 결정은 그래서 바람직하다.

울산시는 맹비난한다. 그러면서 암각화도 보존하면서 시민 식수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전폭 수용하겠다고 했다. 울산시의 반대논리가 오로지 물 부족 문제 때문이라면 대안은 없을까.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의 제안은 어떤가. 기상천외하지만 새겨봄직하다. 지난해 가을 문화재청 국정감사 때다. 그는 울산 바다에 집수시설을 설치해 떨어지는 청정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의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했었다. 며칠 전 통화한 그는 더 생뚱맞은 이야기를 보탰다. 울산시민의 변기를 절수형으로 교체해도 엄청난 양의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변기는 12ℓ가 들어간다. 하루 10번 정도 누른다면 1인당 120ℓ를 쓰는 셈. 울산시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80ℓ인데, 화장실에서 그 40%를 쓴다는 얘기인데, 초절수 변기(4ℓ)를 설치함으로써 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족한 물을 다른 지역에서 비싼 돈 들여 사오지 않아도 건물 지붕, 공장 지붕, 나아가 울산 바다에 떨어지는 무궁무진한 빗물을 모아 공급하고, 더 모자라는 분은 변기 물을 아껴 수요 자체를 줄이자는 이 기발한 발상. 얼핏 우습게 들리지만 탈원전 시대에 암각화를 살리고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혜안일 수 있다.

한 교수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에서 절수 변기로 부분 교체해 21%의 절감효과를 봤다고 한다. 국회도 연내 전체 변기를 절수 변기로 바꾸기로 했다. 새로 건립될 국회 프레스센터와 잔디밭에는 빗물을 모으는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울산이 결단을 내릴 때다. 울산시는 생태제방안 부결이 “도시의 미래를 무시하는 폭거”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자동차와 조선 등 20세기형 먹거리가 수명을 다해가는 시점이다. 생태도시야말로 울산시의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관민이 한 마음으로 빗물을 모아 선사시대 암각화를 살린 도시. 공해도시 오명을 벗고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로 탈바꿈한 성공 경험은 그 자체가 미래형 수출상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태화강이 맑아져 연어와 은어가 돌아왔다지만 그런 얘기는 흔하다. 생태도시를 상품화하기에는 약하다. 한발 더 성큼 나가야 한다. ‘빗물모아 지구사랑’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빗물 집수 방안이 성공하면 세계 최초라고 했다. 산업화 시대의 도시들을 지속가능한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스킬은 향후 1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의 하나가 된다고 한다. 솔깃하지 않은가.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h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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