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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자-권지혜] 康 장관 ‘조금 아쉬웠던’ 외교 데뷔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8일 폐막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외교 역량을 시험하는 자리였다. 취임 후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굵직한 이벤트를 수행하며 워밍업을 했다면, 이번엔 외교수장으로 나흘간 15개국과 양자 회담을 했다.

강 장관은 이날 취재진이 머무는 숙소를 찾아 직접 성과와 소회를 밝혔다. 그는 북핵 문제가 최우선 현안으로 부각됐고,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가 강화됐으며,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장면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강 장관이 지난 6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때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게 경제보복 중단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 장관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간이 없어서 제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중 회담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통역을 감안해도 시간이 없었다는 이유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강 장관이 왕 부장의 ‘사드 훈계’만 듣고 온 건 아닌지 의구심은 더 커졌다. 왕 부장은 이른바 ‘연출 외교’로 유명한 인사다. 그는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 때 짐짓 굳은 표정을 지으며 “사드가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다. ‘사드 찬물’이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만큼 주목을 끌었으니 메시지 전달은 확실하게 한 셈이다.

강 장관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과 관련해 “고맙고 축하한다(thank you and congratulations)”는 표현을 쓴 게 어색했다는 말도 나왔다. 6일 한·미 회담에서 렉스 틸러슨 장관이 결의안 채택을 “좋은 결과”라고 평가하자, 강 장관은 “매우 매우 좋은 결과”라고 호응하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한국과 긴밀히 협의한 데 대한 감사 표시였지만 축하한다는 표현은 남 얘기 하듯 했다는 지적이다.

강 장관은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로 국제사회에 좋은 인상을 남겼다. 어느 곳에서 누구와 만나든 당당한 포스가 느껴지는 건 그만의 큰 자산이다.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와의 회담에선 짧은 시간 돈독한 우애를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데뷔전에서 보여준 허점을 되풀이하지 않는 일이 남았다.

마닐라=권지혜 정치부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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