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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군함도와 옥자, 영화 생태계



여름휴가와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 주말, 극장가는 영화를 보며 더위를 식히려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마침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바라보는 기대작 두 편이 상영 중이었다. 한국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그 주인공. 각각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조선인들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군함도는 개봉 당일 역대 최다 스크린 수(2027개)를 기록하며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켰다. 저예산 영화를 주로 연출해온 민병훈 감독은 자신의 SNS에 군함도 스크린 수에 대해 “제대로 미쳤다. 독과점을 넘어 광기”라고 일갈했다. 군함도의 흥행이 다소 잦아들자 택시운전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호평 속에 흥행몰이 중인 택시운전사 역시 지난 6일 1906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군함도로 촉발된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한국 영화계의 해묵은 과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생긴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대기업이 투자 또는 제작한 영화가 그 기업 계열사 극장에 대대적으로 걸리는 현실. ‘불편할 것도 없는 진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군함도뿐 아니라 그동안 1000만 관객을 모은 대부분의 영화가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소모적인 논란이 되풀이됐지만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대규모 관객을 바라보는 영화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 정도로 여겨졌다. 특정 영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영화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잘 돌아가려면 제작비 100억∼200억원의 대작과 1000만 관객이 넘는 영화도 나와야 하지만 30억∼50억원 규모로 만들어진 500만 돌파 영화도 많이 나와야 한다. 또 작지만 의미 있는 다양성 영화도 그 나름의 관객을 모아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층위의 작품들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영화 생태계가 잘 돌아간다. 그런데 대기업이 투자하고 배급하는 영화가 상영관을 휩쓸어버리면 나머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영화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는 스크린 독점을 철저히 규제한다. 보다 많은 영화가 극장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 8개관이 있으면 같은 영화는 최대 2개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 나머지 6개관은 각기 다른 영화를 틀어야 한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투자 배급사가 극장을 운영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들은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에 따를 뿐이라고 강변해 왔다. 우리도 수익을 내야 하니 관객이 관심 있는 영화에 스크린을 배정할 뿐이라는 논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얼마 전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대해 이들 극장이 상영을 거부한 것은 정당했던가. 당시 옥자를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수요는 왜 무시됐던가. 이들은 옥자 상영을 거부하는 이유로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동시 공개가 영화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군함도가 스크린을 장악하는 것은 영화 생태계를 위해 괜찮은 일인가.

스크린 독과점과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를 규제하고 독립영화를 진흥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대표 발의한 것이다. 현 정부 문화정책 수장의 의지가 담긴 만큼 이번에는 영화계의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최소한 같은 영화가 일정 수치 이상 스크린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대작이든 독립영화든 모든 영화는 관객과 만날 가치가 있고, 관객 역시 이들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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