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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성엽] 블랙리스트와 지역차별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지난 달 사법부의 판단을 받았다. 특검은 정치적 이유로 문화예술인·단체에 정부 지원을 배제한 것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억압한 것으로서,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중대 범죄라고 봤다. 피고인들은 블랙리스트는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의 일환으로 범죄가 될 수 없고, 지원 기준은 정책 기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어느 정부에서나 편향 지원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블랙리스트의 적용·관리가 구속 및 형법상 직권남용죄의 사유가 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2월 서울대 국가리더십 포럼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정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의 인사에서 호남 출신이 차별을 받아왔고 이승만정부를 제외하면 박근혜정부의 인사에서 역대 최악의 차별이 행해졌음이 구체적 수치로 확인됐다. 사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호남 배제가 원칙일 정도로 차별이 거의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제 문재인정부 들어서 고위직 인사에 있어서 호남 출신이 고루 등용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또 다른 지역차별 현상이 도드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적용·관리와 지역 차별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측면에서 같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엄격하게 단죄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특정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법적 조치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굳이 찾자면, 지역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거나 특정지역 출신을 차별·우대하는 것이 헌법상 용인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호남 출신이 차별받아야 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 또한 정권에 따라 특정지역 출신을 차별·우대하는 것은 엽관제에서나 허용되는 것으로서, 이는 헌법상 직업공무원제에 반한다. 설령 특정지역 출신 차별이 역대 정부에서 관행으로 인정돼왔다 하더라도 블랙리스트 사례에서 보듯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한 책임 추궁을 떠나 헌법상 직업공무원제에 반하는 것을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 정권에 따라 특정지역 출신이 차별을 받더라도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면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엽관제를 용인하는 것이고 공무원들의 줄서기 현상만 가속시킬 것이다. 그런 폐단은 수도권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공무원들의 증가에 따라 오히려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출신지역을 따져 차별·우대하는 인사는 전근대적인 것으로서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것이다. 이제는 공무원들이 헌법 취지대로 정권 눈치 보지 않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공정한 인사운영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권에 따라 차별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국민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출신지역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그 법들은 처벌규정 등 규율수단을 갖추지 못해 실효성이 없으므로, 그런 규정들을 포함하는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 성, 장애, 연령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3개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이 법 제정에 준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위헌적 관행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기에 빠를수록 좋다.

유성엽 국회 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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