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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차은영] 쏟아지는 묻지마 정책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칭했던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대부분 문제 그 자체만큼 나쁘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매일같이 발표되는 정부 정책들을 보고 있자면 곱씹어지는 말이다.

새 정부의 시장개입은 도를 넘어서는 느낌이다.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통신비 인하, 탈원전,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 등등 현기증이 날정도로 쏟아내는 정책들이 기본적으로 가격통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통제란 정부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가격결정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공급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저가격제를 실시한다. 그러나 의도는 좋지만 보호하고자 하는 계층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수요와 공급 요인에 변화를 주지 않고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프랑스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우유값이 비싸다는 사람들의 불만에 저소득층을 위해 우유가격을 못 올리도록 최고가격을 통제했다. 처음에는 우유가격이 낮아서 모든 사람이 우유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자들은 시장여건에 비해 낮은 가격의 우유를 공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정부지로 치솟은 값을 주고도 우유를 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유공급자들은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자 우유 생산을 줄이고 버터나 치즈 생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정부가 의도한 것처럼 저소득 계층의 소득을 높이는 효과보다는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임금 때문에 노동 수요를 감소시켜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축출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당장은 최저임금이 오르므로 소득이 늘겠지만 인건비 압박에 부담을 느낀 기업은 고용을 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건비의 상승은 생산비 증가를 초래하고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득증가의 실질효과는 상쇄된다.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일자리만 없어지는 것이다.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통신비가 내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지만 정부가 일방적인 가격 인하를 결정하고 기업에게 통보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치킨 값부터 대학의 전형료까지 정부가 개입하려는 것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서슬 시퍼런 장관들에게 불려 다니는 기업가들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투자를 적기에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정부 정책은 많은 국민들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국가의 장래를 결정한다. 잘못된 정책의 후유증은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언덕을 오르면 시야가 달라지고 생각과 판단도 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정부는 투쟁의 프레임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선거 공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비전문가들이 다수를 이루는 각종 위원회를 양산하고 국가의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정책들을 소통 없이 결정해 버리는 조급함을 보이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준비되고 여건이 좋았던 독일도 탈원전 공론화에 25년이 걸렸고 스위스는 33년간 국민투표를 다섯 번이나 했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발전소 건설을 중단시키는 것은 성급하다. 증세는 세금의 유형을 막론하고 부작용이 적지 않은 정책이므로 정확한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의와 분석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정권창출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 계층만을 대표하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먹거리와 지속 가능한 후생복지를 고민한다면 정책의 목적과 속도를 재고해야 한다. 불통 정부의 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부이지 않은가.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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