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최고의 이륙




비행기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와 좌석을 공유한 적이 있다. 일곱 시간의 비행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그걸 알아챘다. 먹고 있던 기내식에서 곰팡이를 발견한 적도 있고, 내 좌석 등받이에 안마 기능이 추가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발길질을 하던 뒷좌석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기체가 난기류에 휘말려 요동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개인 모니터의 항공정보를 뚫어져라 보는 것뿐이다. 항로,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 같은 정보들 말이다. 그건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날아갈 거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중간에 절대 엉뚱한 지명 위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 난 반드시 거기까지 갈 거야, 뭐 그런 것. 현재 밖의 온도가 얼마인지는 읽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온도는 상상만으로도 차갑고 춥고 불안해지니까.

어떤 항공사들은 나처럼 예민한 탑승객들을 위해 소소한 연출을 한다. 예를 들면 터키항공에서는 기내식 트레이 위에 촛불을 올려준다. 진짜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가짜이지만 촛불이 환기할 수 있는 분위기는 충분히 전달된다. 에바항공은 키티가 그려진 트럼프카드나 리모와 캐리어의 최소형 사이즈를 제공해서 소꿉놀이 기분을 전달한다. 러시아항공은 포천쿠키를 나눠준다. 목베개, 안대, 슬리퍼 같은 기능적인 물품보다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긴 잔상을 남기는 건 이런 감성적인 디테일이다. 기내에서 알코올이 체내에 흡수되는 속도가 땅에서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기내에서 내 몫의 포천쿠키를 반으로 갈랐을 때, 그 안에는 두 개의 상반된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불량품이었지만 사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상반된 문장 두 개쯤은 충분히 합승할 수 있는 것, 그게 인생이다. 나는 지금도 몇 천 피트 상공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오늘의 이륙도 어떤 잔상을 남길 것 같다. 무심히 헤드폰을 썼을 때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비행기는 떠올랐고, 나는 그런 줄도 몰랐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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