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두려움이 필요해



얼떨결에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했다.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들과 노니는 꿈을 가끔 꾸기는 했지만 이렇게 현실로 이루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 10대 포인트에 들어간다는 서귀포 앞바다 작은 섬은 다이버들로 흥겹게 북적였고, 물속은 스노클링으로 잠깐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환상적이었다. 남들은 물먹기 일쑤라는 호흡훈련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타고난 다이버인가 봐!

그러나 막상 바다에 몸을 집어넣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물속은 곧바로 절벽인 데다 발밑은 깜깜했다. 호흡도 스노클링 때와 달랐다. 밧줄을 잡고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미친 듯 허우적거리며 솟구쳐 올라가 바위에 매달렸다. 안되겠어, 못하겠어, 무서워, 나갈래…. 바위에 앉아 잠수 준비하는 사람 다리도 붙들고 늘어졌다. 내가 그런 겁쟁이인 줄 몰랐다. 그렇게 무서워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익사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터져 흩어졌다. 강사가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아무 일 없어요, 천천히 하세요. 당장 올라가고 싶다는 본능과 이 정도 공포에 질 수 없다는 투지가 맞섰고, 결국 나는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숨이 안 쉬어진 건 긴장한 나머지 부지중에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바닷속은 내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 글에서는 황홀했다는 상투적인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게 아쉽다. 특히 누구와 싸우던 중이었는지 잔뜩 부풀어 오른 가시복어를 만난 건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었다. 입을 뚱 내밀고 눈을 뒤룩거리던 녀석은 잔뜩 심술 난 다섯 살 아이 같았다. 황홀한 중에도 내내 뱃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을 꾹꾹 눌러야 했지만, 어쩌면 그 두려움이 황홀경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매혹과 공포가 결합하면 얼마나 막강해지는지 책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는데 이렇게 몸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다니, 근사하다. 두려움은 필요하다. 두려움을 이기는 일은 더욱더 필요하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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