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진짜 배려



어깨가 다친 동안 안 쓰던 근육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염증을 제거했더니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며 잠을 못 자 짜증나고 우울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건강할 때는 잘 몰랐지만 몸이 아프게 되니 이 세상은 양 팔을 마음대로 쓰고 두 발로 잘 걷는 사람들 위주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사회는 건강한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해서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중 많은 경우, 선천적 장애보다 사고나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선천적 장애 또한 그들이 선택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몇 개월 어깨가 불편한 채로 지내다 보니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건강했지만 지금은 몸이 불편해진 사람들, 처음부터 건강한 상태가 뭔지 모르는 이들을 사회적으로 그 자체로 인정하기보단 ‘배려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가진 이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배려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많은 시간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하지만 자신의 불편한 몸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배려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장애인들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는다. 자기 몸의 불편함은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인데 그 현실로 인해 누군가의 배려에 늘 미안해하고 감사해야만 하는 생활이란 몸의 불편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일 수 있다.

자신이 건강하고 형편이 좋아서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배려의 마음을 가진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은 기본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이란 그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들의 몸이 어떻게 불편해져서 비장애인들과 살아가기에 어떤 점이 괴로운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더 ‘능동적인 배려’라고 생각한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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