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배고픈 맹랑이



우리 집 고양이 맹랑이는 열두 살. 사람으로 치면 거의 환갑이다. 그런데 아직도 손을 빤다. 아침에 일어나 잠이 약간 덜 깬 시간이면 오른쪽 앞발을 쪽쪽쪽쪽 소리가 나도록 정신없이 빨아댄다. 그 부분은 털이 누레져서 아무리 씻어줘도 제 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맹랑이는 길고양이 출신이다. 두 달쯤 된 새끼고양이가 골목길 쓰레기통 위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댄다고, 누가 좀 키워달라는 글과 사진이 고양이카페에 올라왔다. 길고양이 새끼는 보통 바퀴벌레처럼 숨어 다니기 마련인데 녀석은 제 살길을 인간에게서 찾아보겠다고 당차게 나선 셈이다. 그 기개가 마음에 들어 즉시 데려와 보니 코는 온통 털이 벗겨지고, 울 때마다 쇠 긁는 소리가 나고, 귀는 진드기투성이. 이 문제는 씻고, 치료받고, 시간이 지나자 해결되었다.

그러나 십 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니 손 빠는 습관과 식탐이다. 처음부터 녀석은 모든 음식에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식용유 묻은 키친타월까지 뜯어먹을 정도였다. 삼사 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었지만,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한도 끝도 없이 사료를 부어주면 바로잡힌다는 비법도 실천해 봤지만 병만 났을 뿐이었다. 수술비가 백만 원 가까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리 처량한 소리로 울며 졸라도 정확히 정해진 분량만 준다. 프라이팬 닦은 키친타월은 즉시 뚜껑 달린 쓰레기통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가끔 녀석의 입에 물린 키친타월을 빼앗아 내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태어나 두 달 사이에 겪은 굶주림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이럴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사는 게 편해져도 그 죽을 것 같은 배고픔이 언제나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앞뒤 분간을 못하게 만드는 거겠지. 앞발을 빠는 습관도 지독한 정서적 굶주림에서 나온 거겠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한 존재의 일생을 강력하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 한 생명을 만들고 낳아서 키우는 일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지를 말해주는 표본이.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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