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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기수] 고독증후군 극복하려면



“부서 분위기가 억압적인데 선배가 욕도 수시로 했다. 비전까지 보이지 않아 우울감이 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할 생각에 심장이 조여 왔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입사 1년 만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우울증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견뎌보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더 심해졌다. 결국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대기업 유통업체에서 일하다 5년 만에 사표를 낸 김모(29·여)씨 사연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씨처럼 직장 내 우울증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할 정도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병적으로 극심한 외로움을 못 이겨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심지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까지 생기고 있다(국민일보 7월 18일자 1면 참조).

일명 ‘고독증후군’ 또는 ‘고립증후군’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얘기다. 고독증후군이란 직장 내에서 외톨이가 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 최대 위험으로 꼽은 직업성 스트레스가 일으키는 신종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과 얽히는 것을 피곤해하고 불편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굳이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타인과 관계 맺기를 최소화하면서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어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독이 직장 내 고립을 자초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등 건강을 해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이 수면과 식욕 저하를 불러 직장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독증후군에 빠지면 자신을 비하, 자신감도 잃게 된다.

이뿐이 아니다. 뇌졸중에 걸릴 위험 역시 높아진다. 연구결과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발병 비율이 30%나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아가 사회적으로 고립됐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조기 사망률은 정상인보다 무려 50%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보고가 있다. 국내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고독증후군을 사회건강 문제로 접근, 하루빨리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고독증후군이 은퇴, 청년실업, 자살 등과 같은 사회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는 만큼 치매나 비만, 흡연 문제와 같이 국가가 책임져주는 게 옳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많이, 자주 웃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복이 웃음을 유발한다면 웃음은 행복을 가져오는 가장 확실한 요소라는 말이 있다. 평소 많이, 자주 웃는 습관을 들이면 우울하고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웃음은 직업성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명지성모병원 허준 의무원장은 “자주 웃으면 뇌졸중에 걸릴 위험을 40%나 낮출 수 있고 수명이 4∼5년 연장된다는 보고가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 스트레스는 수다보다 글로 푸는 것이 효과적이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수다 떨기만으로는 행복감까지 끌어올릴 수 없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져도 금방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고 마는 까닭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글쓰기로 푸는 것이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글로 옮기면 좀 더 차분해지고 생각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쁜 일을 잊으려 억지로 애쓰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할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초콜릿 생각을 지우라고 하면 되레 초콜릿을 더 찾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속에서 떨쳐내려 애쓸수록 괴로움은 줄어들기보다 반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기선완 교수는 “나쁜 생각은 의식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이 낫다. 자꾸 나쁜 생각이 들면 몰입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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