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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고세욱] 페더러, 이와세, 그리고 이승엽



인공지능 알파고가 테니스를 학습했다면 이런 수준 아니었을까. 서브를 하면 상대가 받기 가장 어려운 가장자리 혹은 정중앙선으로 공이 간다. 백핸드 샷은 예술과도 같았고 받아 넘긴 공은 송곳처럼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16일 밤(한국시간)에 열린 윔블던 남자테니스 결승전을 TV로 본 기자는 우승자 로저 페더러의 압도적 경기력에 혀를 내둘렀다. 36세의 페더러는 29세 마린 칠리치를 ‘아이 다루듯’하며 3대 0 완승을 거뒀다. 엄청난 칼로리 소모와 고도의 순발력을 요구하는 테니스에서 30대 중반의 나이는 일반인으로 치면 환갑 정도라고 한다. 페더러 이전 윔블던 최고령 우승자의 나이가 32세란 점은 테니스의 격렬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페더러의 몸놀림과 강서브를 보면 칠리치와 나이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함께 경기를 보던 딸에게 페더러가 칠리치보다 7살 많다고 하자 “거짓말”이라며 못 믿어 했다.

이와세 히토키(43)는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으로 통산 400세이브를 넘긴 마무리 투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의 두 차례 맞대결을 통해 모두 패전투수가 된 비운의 인물로 각인됐다.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며 이와세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는데 최근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이와세는 이달 초 센트럴리그 투수 부문에서 쟁쟁한 젊은 선수들을 제치고 6월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지난달 14경기에 등판해 1승1세이브, 10홀드 무실점을 기록했다. 1999년 데뷔 시즌에 한국의 선동열과 함께 불펜을 책임진 이와세는 이제는 조카뻘 선수들과 경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역대 두 번째 최고령 MVP 수상자인 이와세는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이승엽(41)은 지난 15일 고향 대구에서 가족,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마지막 올스타 무대에 섰다. 9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뒤 8년간의 일본 무대 공백에도 불구하고 한국프로야구에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다 홈런, 최다 루타, 최다 타점 등 타자가 세울 만한 대부분의 기록을 써나갔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키로 한 결정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이번 시즌에도 이승엽은 19일 현재 팀내 최다홈런 2위(16개), 타점 3위 등 경쟁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2000년대 야구를 잘할 때보다 지금 박수를 받으면서 선수 경력을 끝낼 수 있어 더 좋다”며 미련을 지웠다.

이달 국내외에서 전해진 노장 스포츠 스타들의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단순히 나이 많은 이들이 우승하고 상을 받게 된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후배보다 더한 각고의 노력을 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점이 큰 귀감이 되고 있다.

페더러는 올 시즌을 앞두고 포핸드 공격 중심에서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한 템포 빠른 리턴샷을 연마했다. 2014년 부상 이후 하락세였던 이와세는 슬라이더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훈련에 매진, 올해 재기에 성공했다. 이승엽은 안타, 타점, 출루보다 홈런 양산을 목표로 자신 있는 스윙에 집중했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노장 스타들은 우리의 중장년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4050세대는 사회의 주역임에도 어느 때부턴가 꼰대, 개저씨(개 같은 아저씨)로 불리며 주변에 민폐 끼치는 대상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어깨는 처지고 자신감은 떨어져간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태에 억울함마저 갖고 있는 듯하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편으로는 별다른 고민과 노력 없이 권위를 내세워 대접받으려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치열한 직장 현실과 전장 같은 스포츠 무대는 엇비슷하다. 끊임없는 성찰, 절제, 변화 끝에 재기한 노장 스포츠 스타들의 스토리가 사회에서 유효한 이유다. 품격을 갖춰 존경을 받느냐 꼰대로 전락하느냐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회사에서 페더러, 이승엽처럼 되는 것이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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