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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청계천, 서울路 찍고 광화문!



오래전에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물의 존재였다. 저 멀리 한강이 있다고는 하나 도심에서는 도무지 물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개천과 우물이 있는 시골과 딴판이었다. 거대한 도시에 물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나, 저수와 양수 능력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 물의 가치는 절대적이었을 텐데.

답은 옛 지도에 있었다. 1800년대 초기에 제작된 ‘한양도성도’를 보니 경복궁 서편에 백운동천이 흘러내리고, 동쪽으로는 삼청동천이 청계천으로 휘감아 도는 모습이 뚜렷했다. 세검정은 ‘한 쌍의 고래가 토해내는 듯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 이밖에 작은 지류는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이 흐름이 끊어지고, 도로를 만든다며 시멘트로 덮었으니 서울은 물길 없는 무미건조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강북의 굽은 도로를 걸을 때면 들리지도 않는 길 아래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는 도시의 잃어버린 물길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당초 모습과 어긋나는 기형적 형태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굽이치는 물 자체가 신기하기 때문이다. 당장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의 물길이 되살아나 한강으로 흘러가면 좋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이니 이나마 반갑고 고마운 거다. 과거에 복개(覆蓋)한 땅을 다시 개복(開腹)해 물을 실어 흐르게 한 것은 상상력과 실천적 용기의 산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최근 길을 턴 ‘서울로 7017’도 같은 차원으로 접근하고 싶다. 내일이면 개장 두 달을 맞이하는 이곳의 평가는 아직도 엇갈리는데, 나는 ‘도시재생’이라는 정책목표를 넘어 시민들이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는 인문적 성취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본다. 그동안 길에서 빌딩을 올려다보고, 자동차에 밀려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당하던 시민들이 도심 대로를 가로지르는 공중정원에 올라 도시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체험은 각별하다. 사람에 따라 도시의 주인이 되는 듯 뿌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콘크리트로 완강하게 둘러싼 원통형 콘셉트가 한국 나무의 식생을 일률적으로 보여주는 데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시선은 확보했으되 마땅한 볼거리가 없는 것도 취약점이다. 뱀처럼 꿈틀대는 기차, 낡은 창고, 눈앞을 가로막는 대형마트의 입간판이 전부다. 그래서 ‘문화역서울284’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앞으로 전시기획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서울로에 가는 사람은 반드시 문화역에 들르는 코스로 만들면 좋겠다. 노숙인을 불편해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서울역광장과 서울로는 옹색한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멋진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게 중앙역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것은 광화문광장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많은 논의의 장을 마련해 광장의 성격과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 과정 속에 국민은 “우리도 제대로 된 광장 하나 가질 때가 됐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본다. 시민들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편안한 마당 혹은 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터 같은 곳 말이다. 서울시의 당초 구상은 소박했으나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새 정부의 공약이행과 맞물리면서 자못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즈음에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치적이나 공명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냥 국민이 행복한 공간, 누구든 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자랑스러운 곳으로 만들기로 작정하면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이런 내용을 시민들에게 빈번히 알리면서 만인의 지혜를 구하는 과정에서 해법이 나온다. 나중에 근사한 광장이 조성되고, 그 한쪽에 꺼지지 않을 촛불의 심지 하나 들어선다면 광화문광장은 자유와 민주의 공간으로 이름을 떨칠 것이다. 도시는 그렇게 한걸음씩 진화한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 (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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