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반려폰



내 휴대폰의 나이는 1년 반쯤 됐다. 오십 번은 땅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 액정이 멀쩡하고, 노트+펜과 카메라 기능도 좋고, 그립감도 좋다. 단지 약점은 통화가 좀 안 된다는 거다. 전화 통화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어디세요?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곳에 계시나 봐요.” 그 시각 난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있을 뿐인데. 내 휴대폰은 장소를 좀 가린다. 집 안에서 통화 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은 내 방 책상 앞이다. 부엌에서는 도마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잘게 다지는 것처럼 말이 들린다.

P는 만날 때마다 휴대폰을 바꾸러 가자고 한다. C는 도청당하는 거라고 한다. J는 머리가 아프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곧 바꾸겠다고 하지만 그런 채로 벌써 몇 계절을 지나왔다. 상대방의 말이 뭉개질 때면 그 공백을 내 추측으로 메우면서 말이다. 봄 초입에는 한쪽 볼에만 트러블이 생겼는데 생활습관-휴대폰도 범인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대방 말을 알아듣기 힘들 때마다 휴대폰을 볼에 밀착했으니까. 당장 휴대폰을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어폰을 애용하게 됐다. 여름 초입에는 S펜이 사라졌고 충분히 전화기 교체의 이유가 될 것 같았으나, 곧 펜 없이 손끝으로 S노트에 메모하는 데 익숙해졌다.

휴대폰 교체는 몹시 귀찮은 일 중 하나다. 한 번 힘을 모으고 모아 수리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아무 이상 없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더 의욕을 상실했다. 게다가 휴대전화가 24시간 일정하게 안 좋은 게 아니라 장소와 시간대, 기후, 혹은 기분의 영향을 받아 느슨해지니까. 내가 거기에 맞추게 됐다. 이를테면 통화할 일이 있을 때 내 방 책상 앞에서, 아니면 휴대폰이 좋아하는 외부 장소로 최대한 나가보는 것이다. ‘휴대’폰은 못 돼도 ‘반려’폰과 산책하는 기분은 된다. 최근에는 휴대폰이 어떤 터치에도 반응하지 않고 멈췄고 마침내 Y는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진짜 무(無)로 돌아가려는 것 아닐까요?” 잠시 후 휴대폰은 다시 살아났다. “잠깐 졸았어.” 분명히 그런 눈빛으로.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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