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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이재호] 한국의 국가경쟁력 어디로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5월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작년과 동일하게 조사대상 63개국 중 29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기업효율성 순위는 작년과 비교하여 48위에서 44위로 상승했지만 수출부진에 따라 경제성과 항목은 22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정부효율성 부문도 작년의 국정공백 상태가 영향을 미쳐 두 단계 떨어진 28위를 기록했다. 인프라 분야는 올해 처음 지표에 포함된 미세먼지 노출도가 하위권(55위)을 기록함에 따라 전년도보다 두 단계 하락하여 24위로 밀렸다.

순위가 상승한 기업효율성 지표들도 세부항목을 보면 내용이 좋지는 않다. 생산성은 35위로 그나마 중위권 수준이지만 노동시장 관련 지표들은 52위에 머물고 있다. 경영관행 항목은 최하위권인 59위에 그쳤다. IMD는 한국기업의 노사관계가 불안정하고 경영진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리자의 신뢰성은 주요 선진국 기업들과 비교해 볼 때 바닥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들은 과학 인프라(8위), 기술 인프라(17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과학 경쟁력 지표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2위), 총 연구개발 인력(5위), 기업연구개발비 지출(5위) 등 양적 지표에 집중되어 있고, 연구자가 국가에 매력을 느끼는 정도(33위), 지적재산권의 보호 정도(44위), 기업의 혁신역량(34위) 등 질적 지표들은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계량화가 가능한 양적 항목들에서는 경쟁국을 앞서거나 그들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반면 계량화가 어려운 질적인 부문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대기업들은 창업자의 진두지휘하에 일사불란함과 속도를 무기로 하여 추격자(fast follower)형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왔으며, 이런 기업경영 방식은 양적 지표 달성을 목표로 하고 물량 중심의 성과를 거두는 데에는 매우 고무적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고착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은 한국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데에 부정적인 제약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집중화된 소유구조하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하여 사업모델을 확정하고 위기의식을 고취하며 종업원들을 몰아가는 기존의 한국적 경영방식은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으나 종업원들이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갖고 동기 부여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의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인 성과를 도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IMD의 평가보고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은 매우 복합적인 방식으로 정의되고 측정될 수 있으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 양적 투입과 산출요소를 증대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조직원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여건하에서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과업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경제적인 이익과 이해관계자의 니즈를 연결할 수 있는 사업모델의 개발과 실행, 자율적이고 상호 소통하는 선진적인 기업문화의 확산, 고용의 다양성 확대 등을 통하여 지금까지 쌓아 온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차별화된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 국가의 혁신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 법, 제도, 경영진의 품성 등 보완적 자산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자산에 대한 제고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재호(경희대 교수·무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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